목자이신 하느님 앞에 우리는 무력한 양이다.
우리 실존은 너무나 불안하고 나약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오늘 어쩌다 평화를 누린다 해도 내일이 되면
오늘 누린 평화가 무색할 정도로 그 평화는 무참히 깨져 버린다.
하지만 주님은 무려 365번이나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다.
힘겨운 인생살이에서도 우리가 두 다리를 펴고 편히 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매일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의식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바른길 인도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항시 바른 길이다.
때로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도대체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모를만큼 혼돈스러울 대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면
그 길은 우리에게 가장 맞는 길, '바른 길'이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느님께 청하기보다는
하느님이 올바르다고 보는 바를 하시도록 청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인간 이해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언어 표현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평한한 길을 걸어갈 때에만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값싼 신앙이다.
참신앙은 가라른 길에서도, 때로는 나락 속에서도
하느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돌보고 계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신앙의 신비는 바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의탁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구세주라 고백하는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겪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고통을 채우셨다.
그러니 유한한 인생 길에 시련과 고통이 있을 수 있다.
'비록'이란 신앙고백 필요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어두운 골자기를 지날 때
중요한 말은 '비록'이란 말이다.
'나는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노라'
'비록'이란 말이 우리 입에서, 가슴에서 신앙고백으로 나와야 한다.
'비록'은 시련 안에서 그 시련을 적극적으로 대면하려는 우리 태도를 드러낸다.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당신 자녀인 우리를 고통에서 보호하시고,
또 고통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말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 고통을 치우기 보다는
고통을 잘 견딜 수 있록 용기를 주신다는 말이다.
우리 죽을 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잊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게 우리삶의 어두움을 치워달라고 청하기보다
그 어두운 밤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해야 한다.
신앙이란 신비스런 체험이나 환시, 아니면 하늘에서 들여온 소리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은 진자로 존재하시는 선하신 분이고,
그 하느님이 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그가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는 결단이다.
하느님 지팡이에만 의지를
생의 어두운 밤에서 우리 눈은 시각장애인처럼 주님을 보지 못한다.
주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이 내시는
지팡이(목자의 현존) 소리를 들어면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데 희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 느낌에 의지하거나 우리가 세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주님 신실하심에 의지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모습은 주님 지팡이가 정말로 필요한 상황에서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은 점이다.
삶의 어두운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느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레 절망해서 신앙을 포기한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거칠 때 하느님 지팡이 외에는
어떤 지팡이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물이나 명예와같은 다른 지팡이를 쥐고 있으면 있을수록
하느님 지팡이에 의지해 일어서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 지팡이에만 의지해야 한다.
<송봉모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장-평화신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