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샘’
순교복자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여주에 소재한
‘침묵의 샘 피정의 집’으로 사순절피정을 다녀왔습니다.
11일 토요일부터 1박2일로
11지구 성령봉사회에서 봉사자 27명이 함께 했습니다.
침묵의 샘 피정의 집에는 9명의 수녀님들이
고요한 행복을 살고 계셨습니다.
전날 밤 밤샘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침묵의 샘에 도착한 우리들은
피정을 주관해주시는 루시아수녀님을 따라
우선 웨밍업으로 피정의 집 뒷산을 올랐습니다.
아직은 새싹이 없는 마른 산을 오르며 묵주기도를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에게 말을 걸어보며
30분 조금 높은 야산을 올라가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성심상의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예수 성심상 아래서 성가로 찬양을 올리고
큰절 3배로 경배를 하고나서
내려오는 산길은 오랜만에 도시를 떠난 산속의 맑은 공기가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 다시 그 산길을 십자가의 길을 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연결된 우리의 삶의 자세를 묵상했습니다.
이틀 동안 수녀님들이 만들어주시는 정갈한 식사를 맛있게 하며
이렇게 외진 산속에서도 평온함과 행복함으로 빛이 나는
수녀님들의 고요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함께
조용한 평화가 무럭무럭 피어올랐습니다.
루시아 수녀님의 영적 말씀은 조용조용 조근조근 하셨지만 말씀 안에서
우리들의 심령은 풍성하게 새로운 깨달음과 은혜로움으로 출렁거렸습니다.
목마른 이들이 침묵의 샘에서 흐르는 생명수를 흠뻑 마셨습니다.
성체 앞에서 머무는 행복한 시간들,
이틀 동안 기쁜 순간들을 나누고파
또 루시아 수녀님의 말씀이 좋아서 여기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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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루시아 수녀님의 첫 번 째 강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주님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 시편 84, 13 -
내 영혼의 진단 “말씀이 나를 먹고 있는가?”
나의 겉사람과 속사람은 정말 충만한가?
주님께서 나에게 십자가를 들이댈 때 나는 충만할 수 있는가?
고난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고백해야 진짜 충만한 것이다.
나의 영적인 속사람은 구원을 받았다.
겉 사람까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 단련해 간다.
‘네가 봉사한 20년 너 그것 너를 위해 산 것이다’ 하고
주님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는 주님한테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인 단계가 있다.
내가 노력해 가고 있는데 보니 열매가 하나도 없다.
예수님 “너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주님 저는 예수님 당신만을 원 합니다” 대답할 수 있는가?
주님을 만나고 겉사람이 죽고 주님이 사는 생명만 남는다.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하느님께 가지고 갈 것이 없다.
나를 드리대며 간곳에는 생명이 없다.
‘善’을 내가 했으면 오히려 그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어려움을 주님한테 매달려서 가면 그것이 모두 주님 것이다.
내가 잘 나가서 내 것으로 하면
주님 것이 아니고 나 좋아서 한 내 것이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시는 고통의 순간순간이 생명이다.
불 화덕에 넣으시며 단련을 시키신다.
그 사람 때문에 그 고통 때문에
내가 주님 의지하고 가면 그것이 생명이 된다.
진짜를 빨리 깨우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요한복음 5장 베짜다 못가에서 38년 앓고 있던 병자를 묵상해 본다.
그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서 고쳐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만 길게 설명을 했다.
38년 동안 앓던 병자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마음에 와 닿아 눈물이 나온다.
그 병자는 그 긴 세월의 처절한 고통의 처지에서 주님을 만났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38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만났다.
나는 나의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가?
자기의 ‘의’는 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다.
내 힘을 빼는 것이다.
하느님의 커트라인은 ‘0’ 이다.
그보다 올라가도 내려와도 안 된다.
깎기 위해서 단련이 온다.
어떤 이는 자존감이 너무 낮다.
항상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없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경쟁이 생긴다.
우연 중에 들어가 있다.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도 쓸데없는 것에 열을 올릴 때가 많다.
주님의 진짜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로 사도는 자기의 단점으로 먹고 살았다.
‘내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나의 십자가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바울로 사도는
‘내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나의 약점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내가 깎일게 없으면 주님께 올릴 것이 없다.
고통은 나를 위해 주신 것이다.
주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 겉사람 때문에 기도하게 된다.
모든 것이 주님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 문제를 허락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문제가 오지 않는다.
그분의 뜻 그것이 양식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뜻을 살 때 그때 진짜 생명이 된다.
감사해야 한다.
자녀를 지팡이로 삼을 수 있다.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녀를 지팡이로 삼으신 것이다.
하느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이다.
이 사건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실천이 어렵다.
나의 상황 속에, 내 집 문제 안에 들어가면 Amen이 어렵다.
Amen을 실천할 때 기적이 온다.
그리스챤에 기적은 상식이다. 날마다 기적을 볼 수 있다.
내안에 주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
너무 기뻐하시는 기도는 ‘Amen'이다.
사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다.
너는 Amen만 해라 하신다.
고민할 때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다.
마음 한 톤이 놓아져서 Amen 했다. 하느님이 강의하셨다.
사람들 너무 기뻐하며 돌아갔다.
마음에 파동이 온다. 주님 사랑하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라보니
나의 영이 내 영혼 저 높은데서
‘Amen Amen’ 하며 계속 아름다운 영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 영은 Amen을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성모님도 Amen을 사셨고 창세기의 꿈장이 요셉도 Amen을 살았다.
오늘 하루 사는 것 주님 것이다.
주님이 모든 것을 앞서 가시면서 만들어 가신다.
나는 Amen만 하면 된다.
주님이 나를 이끄시는 것이다.
당신이 이 사건을 이렇게 허락하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배반을 통해서, 내 자존심이 무너져서, 내가 짖밟혀서
나를 다시 만드신다.
나의 겉사람을 두둘겨서 새로 만드신다.
그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꺾으신 것은 하느님이 다시 세우실 것이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노래했다.
가장 어려울 때 ‘야훼는 나의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깊이 고백할 수 있는가?
정신을 차리십시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의 겉사람도 따라간다.
하느님 믿지도 않는데 잘 사는 것 보고 나의 겉사람이 따라간다.
이제 많이 살아야 20년 30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하느님께서 욥처럼 다 가져가실까봐 두려워한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 안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쑥 깊이 들어와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주님과 일치할 때 생각만 해도 그것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다.
믿음이 있으면 믿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느님과 결합되면 자유가 온다.
물질적인 것도 다 채워주신다.
하느님 자녀가 세상에서 찌들어 사는 것 좋아하시지 않는다.
세상에서 누리기를 원하신다.
내가 영의 사람이 되면 육적인 것을 제압하며 살아간다.
시편 92편 말씀을 주셨다.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돋아나고
레바논의 향백나무 자라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돋아나리라.’
레바논은 바람이 세다. 나무가 자라는 것이 힘들다.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란다.
향백나무는 그 향기가 백리를 간다.
사순절에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면형무아. 순교복자 수도회 창설 신부님 말씀이다.
내가 없어지고 내가 성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 모두 나의 에고를 쌓아올릴 뿐 이었다.
때가 이르러 주님께서 나의 에고를 부스셨다.
나는 박살이 났다.
눈물 콧물은 여유가 있을 때이다.
숨을 못 쉴 정도로 힘들 때는 그것도 안 된다.
그래도 그안에 하느님 손길이 있었다.
박살을 내도 하느님 손길 안에 있다.
주님께서 박살난 것을 채로 쳐내는 작업을 하셨다.
주님의 은총의 시간이다.
견뎌내십시오.
죽던지 살던지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 순종을 하니 그 다음부터
주님께서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
생명은 하느님이 하신다. 나는 씨를 뿌리기만 했다.
하느님께서 물을 주시고 키우셨다.
많은 영혼들은 나의 빈 밭이다.
나는 참깨 씨를 뿌리듯 톡톡 씨를 뿌리면
하느님이 물주시고 키우신다.
나는 부자이다. 나는 부농이다.
모든 일에 지향을 가졌다.
풀포기를 뽑을 때마다 지향기도를 했다.
고추를 따면서 지향기도를 했다.
모든 일에 육적으로 힘든 사람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
연옥영혼들을 위해서 지향을 가지고 일을 했다.
“연옥영혼들 하나씩 하늘나라 가게 해 주십시오‘
내 사랑의 예금 통장이 늘어갔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이 체득되어 갔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예복이
들씰날씰 한올한올 지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준비였다.
하느님께서 펼쳐 가신다.
하느님께 훔숭지례!
모든 만물이 하느님 영광으로 꽉 차있다.
침묵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치유 받아야 하는가?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