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 복음 20장 17-28절 | ||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
| 사랑의 삶 허찬란 신부 | ||
| 성소자 때 한 사제의 진면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구의 한 신부님이 시골 성당을 신축하기 위해 저희 본당에 모금 강론을 오셨을 때입니다. 신부님은 등에 병이 생겼는데 진통이 심하여 파스라도 붙이려면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는 아픈 이를 위해선 기도와 안수로 도와줄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이고, 심지어는 죽을 때 종부성사도 스스로 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론의 하일라이트는 당신 혼자서 병이 도져 도저히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 때, 먼저 벽에 파스를 붙인 후 그쪽으로 자신의 등을 갖다 대면서 파스를 혼자 힘으로 붙이며 지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은 결국 얼마 안 있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병에 걸려 미국까지 가야 하는 수난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론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울었고 저도 울었습니다. 사제가 성당을 짓기 위해 신부가 된 것도 아니고 다른 성당에 동냥하러 신부가 된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한 가지 이유, 파견된 곳의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공동체,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예수님은 수난을 예고하시며 그 결과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삶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며 오늘날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제들의 삶입니다. | ||
| J발톱 | ||
| 오늘부터 정은영을 바르톨로메오 수녀라고 부르겠습니다.” 수도명을 받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설렘과 감사함으로 기억한다. ‘바르톨로메오.’ 왠지 편안하고 친숙한 이 이름이 좋아 성경과 성인 사전을 뒤져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내 삶의 매순간이 주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해주시라고 기도했다. 이런 거룩한 이유를 뒤로 하고 내가 이 이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또 있다. ‘발 도로(다시) 매시오’ ‘밤톨’ ‘발톱’ ‘발토로.’ 발음하기가 어려운 탓에 여러 가지 애칭들을 갖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칭은 ‘발톱’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름피서 중 막내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된 일이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는 막내동생의 발가락을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작은 아이의 발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말이 우리 가족에게는 청천벽력처럼 들려왔다. 모두들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광주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다행히 동생의 발가락을 잘라내지 않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우리가 걷는 데 발가락들이 70~80퍼센트의 힘을 차지한다는 것! 내 몸의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양말로 가려져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발가락들이 이렇게 소리 없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나는 유난히 발을 좋아하는데 발 중에서도 어째 도대체 예뻐 보이지 않는 이 발톱이 나의 애칭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정답게 다가오곤 한다. JESUS의 J를 붙여 ‘J발톱… 주님의 발톱’으로, 내 삶도 이렇게 소리없는 소박함으로 주님을 위해 걷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는 몫을 할 수 있다면…. 잠시 발가락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낸다. “고맙다 발톱.” 정 바르톨로메오 수녀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 ||
마태오 복음 20장 17-28절
2007. 3. 7. 오전 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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