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레지오마리애} 2007년 1월호. 삶의 십자가와 주님의 은총은 함께 있음을
제가 신학교 1학년일 때였습니다. 처음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니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긴장을 했는지 새벽에도 잘 일어나고 기도시간에도 잘 나갔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긴장이 풀어지면서 계속 늦잠을 자고 기도시간에도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각을 했는데 생활부장을 하는 선배님이,
오늘 저녁식사 후에 자기 방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단을 좀 맞겠거니 걱정을 하면서 선배님 방에 갔는데 선배님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고
앞으로 기도시간에 늦지 말라는 뼛속 깊이 느껴지는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생각에 잠겼고, `내가 왜 이러는가?`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신학교의 규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밤늦게 공부를 할 수도 있었고, 운동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었고,
또 늦잠을 자면 어머니께서 깨워주시니 참 편했었죠.
하지만 신학교에서는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야 하고, 정해진 시각에 기도해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만 운동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야 합니다.
하나의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하니,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1학년 때의 삶은
그에 적응하느라 매우 힘든 것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한참 TV도 보고 놀 시간이지만 취침해야 합니다.
아침잠이 많은 저에게는 기상시간도 참으로 고역이었습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성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죠.
미사 전의 묵상시간은 거의 졸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왜 이러는가?`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배님한테 혼난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죠.
그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규칙에 끌려다닐 것인가?
어짜피 이곳에서 살 것이라면 규칙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내가 끌고 가며 살아보자.`
그 후로 저는 시계를 5분 빠르게 맞추었습니다.
모든 것을 5분 일찍 살아보자는 뜻이었죠.
그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서 미사시간, 기도시간, 수업시간에 조금씩 일찍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니까 시간에 쫓기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생각한 것같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이니까
다급해서 서두르는 일도 적어지며, 서두르다가 빼먹는 실수도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삶 안에서 짊어지게 되는 십자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피할수 없는 것이라면 좀더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끌어안는 것이 더 좋지않을까요?
피하려고만 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본다고 하는 것보다,
어차피 다가올 십자가라면 기쁘게 맞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일이라면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은 힘들어서 고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고통은 보람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고생은 행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게 더 큰 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선배님의 따끔한 충고를 받지 않았다면
저는 늘 규칙에 끌려다니다가 교수신부님이나 원감신부님께 끌려가서 반성문을 썼을 것이고,
또 그 일이 반복되었다면 신부도 되지 못하고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생활의 변화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참아내야 가능합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절제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노력이 있는 곳에서 하느님의 은총은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과 십자가의 고통이 함께 있듯이
우리 삶의 십자가와 주님의 은총이 함께 있음을 기억합시다. 아멘.
- 서울대교구 윤병길․세례자 요한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