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

2007. 11. 27. 오전 10:12:38

글자
 

예수님의 오심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심, 神이 한 아기가 되심은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우리 지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이 신비를 우리 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우리 또한 필연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 겸손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신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이런 불가능한 선물을 받는 우리는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며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심의 첫째 의미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내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이루신 아버지의 뜻으로부터, 곧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로부터 우리는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다다를 때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곧 구세주,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때, 비로소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철저히 위하는 삶을 사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

오심은 마중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오심은 그에 맞는 준비와 영접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로, 우리 마음속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이에 맞게 예수님을 맞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동쪽에서 오는데, 서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마중 가서는 안 됩니다. 배를 타고 오는데 비행장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오시는 분의 신분과 그 오심의 방법에 맞게 준비와 영접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낭만이 아닙니다.
성탄 구유는 낭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비천하게 비참하게,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우리보다도 못한 인생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철저한 비움과 철저한 포기입니다. 우리는 한 번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일 자리가 우선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기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맞아들인 예수님에 따라 우리의 생활을 펼쳐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의 생활이고 사랑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진정한 오심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평화의 오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하느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우리와 너희 사이에, 먹이통에 눕힌 아기 예수님이 계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계실 때, 진정한 평화가 주어집니다. 우리 자신이 오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분처럼 살아갈 때, 예수님 오심의 의미가 우리에게서도 되살려지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故임승필 신부님께서 2002년에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강의하신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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