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말씀 관계 맺기
베리따스 지도신부 이 재 을 (사도요한) - 봉천7동 성당 주임)
산 속을 걷다 보면 거미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거미줄이 얼굴과 몸에 붙는다. 매우 귀찮다. 그러나 거미 입장에서 보면 그게 아니다.
거미는 이렇게 항의할 것이다.
“야, 못된 인간아!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너 눈멀었어? 내 그물을 몽땅 망가뜨려 버려?! 내 생계 도구를 망쳐 놀 수 있어.”
또 걷다가 보면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 종종 나무뿌리가 밟히기도 한다. 인간으로서는 움푹 파여진 땅을 디 딛는 것 보다 뿌리를 밟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 딱딱하고 미끄러질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는 이렇게 항의 할 것이다.
“아야! 왜 등을 짓밟는 거야?!! 나 매우 아파. 이 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나를 밟고 다니니 나 너무 고통스러워! 내 등이 다 벗겨지면 나 죽어. 제발 살려줘. 제발 살려줘!”
거미와 나무는 말할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너의 생계 도구를 망가뜨려 버려서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고, 너의 굽은 등을 마구 짓밟는 다고 생각해봐. 너는 살 수 있겠니?”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 인간들은 너희만 옳다고 하고 옳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래? 너희들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그것이 옳다고 보는 거야?!!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 우리들이 거미이고 나무뿌리니까 참지. 너희 같으면 참을 수 있겠어? 너희들은 너희들이 받은 것보다 상대를 더 욕되게 하면 했지. 그 이하는 안할 거야.
인간은 자기 판단, 자기 보호. 자기 생활에 익숙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 때문에 이기적이 된다. 상호 삶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땅과 나무뿌리는 서로 서로 도와준다. 뿌리는 자기의 줄기를 뻗어 땅 속에 박는다. 뿌리는 울퉁불퉁하고 곡선으로 뻗는다. 뿌리를 뻗어 땅을 붙잡아 주고 흙이 쓸려 가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땅은 뿌리를 덮어주고, 뿌리를 붙잡아 주고 살게 해준다. 서로 함께 하며 도와주고 살게 해 준다. 더불어 산다.
우리도 이웃들과 서로 서로 연결되어 살고 있다. 관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관계 안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관계를 통해서만이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 등 각 공동체 종종 관계 맺기를 거절한다. 스스로 관계를 끊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 자기 열등과 소외의 표현이다.
내가 오늘 하느님과 기도하기를 주저한다거나, 가족들과 대화하기를, 직장에서 동료들과 협력하기를, 그리고 신자들과 만나기를 주저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관계 맺기를 주저하는 것은 이와 같은 잘못된 본성 탓이다.
예수님은 가능한 모든 사람과 만나셨다. 관계하셨다. 먼저 네 제자들과, 열 두 명의 제자들, 칠 십 이명의 제자들, 수많은 영육이 소외 된 이들, 여성들, 이방인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등 세속적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 까지도 만나셨다.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이웃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신앙인으로서 관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기쁜 소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관계는 다리다. 내 안에 살고 계시는 주님이 다른 형제에게 건너가시도록 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얼마나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가? 왜 주저하고 있는가? 왜 아직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다가서지 못하는가? 아직도 내 입장만 생각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