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안에서 평화의 인사, 부활초

2006. 10. 19. 오후 5:42:59

글자
 

                  *  장례미사안에서 평화의 인사, 부활초     

                                                                                         *허윤석 세자요한 신부 연령회지도

 

* 이글은 11월 첫째주 주보에 실을 글입니다. 그간 잘못된 관행이었던 주일미사때 장례미사를 봉헌하지 못했던 것이 주교님의 교서로 모두 봉헌될수 있었고 올해 9월 사제총회때 제가 장례예식에 대해 신부님들께 강의하고 통일된 장례예식이 되고 좀더 신자들에게 사목적 배려가 될수 있도록 신부님들께 말씀드린것중 중요한 것을 주보에 실어서 실천될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2004년 주교회의는 그간 잘못인식되었거나 잘 실천되지 못한 장례미사의 전례부분을 삭제 혹은 보완하였으며 사목적배려와 토착화작업을 통해 장례예식서 개정안을 발표하였으나 홍보와 교육부족으로 개정취지와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제총회때 모든 사제들이 바뀐 전례사항들을 나누었으며 이에 관하여 신자들과도 함께하기 위해 이글을 씁니다.


얼마전 교구장님께서 장례미사중에  “평화의 인사”를 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주교님께서 전례를 틀리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대부분 장례미사에서 평화의 인사를 생략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미사경문을 자세히 보면 “생략할수 있다.”고 있을 뿐 반드시 생략하라는 지침은 없습니다. 이렇게 장례미사 안에서 평화의 인사생략은 지금껏 무분별하게 확대되어 주례사제의 의향과 상관없이 미사 해설자가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라는 사제의 평화와 사랑의 인사 이전에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을  먼저 발음하여 사제가 평화의 인사를 하려하여도 해설자가 가로막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관행입니다.

교구장님은 이날 장례미사에서의 평화의 인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시면서 평화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미사성제안에 나누게 되는 평화의 인사는 세상의 평화가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이후에 주신 생명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참평화와 사랑의 위로인 것입니다.”

   이미 한국주교회의가 2004년 개정한 장례예식서에서는 “부제나 사제는 교우들에게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하도록 권한다.” 이후의 루브리카(전례지침)인 “장례미사에서는 생략 할 수 있다.”는 부분을 분명 삭제하였습니다. 이 부분을 삭제한 목적은 장례미사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제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신앙으로써 서로 평화와 위로를 나눈다는 전례정신에 따라 평화와 사랑의 인사의 행위를 하도록 권고하기 위함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기존에 이 평화의 인사는 무조건 생략하는 것이 관행처럼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습니다. 사실 “장례미사에서는 생략 할 수 있다.”는 루브리카(전례지침)는 로마미사경본(messa romanum)에서도 있지 않으며 전세계 모든 언어권의 미사경문에서도 장례미사에서의 평화의 인사의 생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사 특히 장례미사의 가장 중요한 점은 부활신앙의 희망과 기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애도와 추모의 성격만이 아니라 부활의 성사적 표징으로서 부활신앙의 희망을 드러내는 잔치인 점을 우선시되어야 함을 교령은 강조하고 있으며 강론 또한 조사형식을 넘어 부활신앙의 지평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바로잡아 2002년에 개정된 미사 총지침의 전례정신에 따라 생략하기보다 권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례교육과 홍보부족으로 아직도 많은 장례미사에서 평화의 인사가 안타깝게도 생략되고 있습니다.

 장례미사안에서 평화의 인사 생략은 사목적 배려의 차원이나 토착화이기보다 문화의 역전이 현상(Trans Culuration)으로 그간 많은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장례식은 엄숙하고 슬프다는 사회통념적 문화인식이 역전이 되어 루브리카(전례행위지침)에 적용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제의색을 검은색뿐아니라 흰색또한 허용함으로써 부활신앙의 전례적 표지를 드러내는 노력에 비하여 평화의 인사생략은 부활신앙의 전례적 표징을 드러내는 노력에 역행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이번에 개정되는 새 미사통상문에서 장례미사에서의 평화인사의 생략부분을 삭제토록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장례미사안에서 우리는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통해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 순간의 평화와 사랑의 인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참평화와 위로가 될것이며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이정표가 될것입니다.

 장례미사안에서는 초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빛이며 생명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를 전례적 표징을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례미사때 제대초를 3개까지 자유로이 켤수 있도록 교회는 배려하였습니다. 또한 특별히 장례미사때의 부활초는 장례미사의 목적을 잘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일미사때 마다 봉헌하는 신경의 내용인 “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는 신앙고백의 표지입니다.

장례미사 지침에 보면 “부활초를 영구 머리 맡에 켜 놓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부활대축일 미사때 축성된 부활초는 부활시기에만 켜고 제의방에 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장례미사때 영구의 머리 맡에 켜놓은 부활초는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었던 하느님의 불기둥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시인인 어느 비신자가 장례미사때 켜놓은 제대위의 초를 보고 그 크기와 장엄함에 감동되어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초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활초입니다!”라고 신자가 답하였더니 “천주교의 장례미사는 참으로 희망어린 새로운 생명의 의미들이 담겨있네요!”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구(靈柩)머리 맡에 켜진 부활초를 보며 부활성야때의 빛의 예식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부활미사와 장례미사를 연결해 주는 전례적 표징인 부활초의 역할이다.

그러나 장례미사때 부활초를 켜놓는 성당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례는 가시적인 상징으로서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장례미사에서 부활초의 이러한 의미를 안다면 무겁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부활초를 켜지 않는 장례미사는 사라질 것이라 본다.

댓글 1

  • 2006년 12월 10일 오후 1:19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부활임을 믿을 때 부활초의 사용이나 평화의 인사 의미가 명확해 지는 것 같습니다.

지도신부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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