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속에 성가대석에 서봅니다.

2004. 4. 19. 오후 1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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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가끔

      고요한 시간에

      성가대석에 올라가 보곤 합니다.

       

      자리에 가만히 서 보면

      비어있는 의자들 사이로 노래소리가 들립니다.

      20년 세월을 넘나들며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그 작은 공간속으로 가득히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공간속에 시간은 살아있습니다.

      추억은 고요속에서 생명을 되살려냅니다.

       

      부활대축일 미사를 마치고

      혼잡한 마당을 빠져나와 연극을 끝낸 배우처럼

      텅 빈 그 자리에 또 서있어 봅니다.

       

      공간도 시간도

      얇은 경계선을 두고 이쪽과 저쪽은 참 대조적입니다.

      혼잡과 고요.

      긴장과 허탈.

       

      그 경계에서 한발짝 안으로 내딛으면

      나는 또 다른 나를 봅니다.

       

      한 쪽이 강할수록 반대로 다른 쪽도 강합니다

      적막하리만큼 고요함과

      극도의 허탈함을 받아들입니다.

       

      얼마 전

      본당을 떠나시며

      이 자리에 고요히 서 계셨을 수녀님을 떠 올려봅니다.

      짧은 메모를 남기시며 그분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수없이 서보는 자리이지만

      고요속에 서보는 이 시간은

      주님의 또 다른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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