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가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아쉬움들이 남았답니다.
우리 성가대에 남성 소리가 조금만 풍성해진다면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성가를 해볼 수 있을텐데..
사실은.. 커다란 아쉬움입니다.
비슷한 규모의 어느 성가대(합창단)에 전혀 부럽지 않은 여성단원들의 소리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아쉽게도 상대적으로 위축되어있는 남성의 소리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답니다.
이제 발표회를 향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갑니다.
우리 모두.. 남성들을 찾아봅시다.
비단 지휘자나 임원들의 몫만은 아닙니다.
내가 꼭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봅시다.
게으름을 피우는 단원들을 일깨우고..
또 새로운 남성들을 초대합시다.
우리가(성가대가) 받는 이 은총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가만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여성들의 소리에 묵직한 남성들의 소리가 풍성하게 겹쳐지는 그 장면을 느껴보십시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듯합니다.
우리가 움직입시다.
아니 내가 움직입시다.
대충 한번 말 건네보는 식의 권유가 아닌..
끈질지게 달라붙읍시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나중에 그들도 감사해 할것입니다.
우리에겐 정말로 커다란 탈란트들이 꿈틀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 탈란트들이 세월의 무게에 묻히기 전에 멋지게 장식하여 하느님께 봉헌해봅시다.
그냥 이렇게 무덤덤 지나가기엔 너무도 억울하지 않습니까?
파이팅합시다.
우리의 아쉬움을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아니 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아니 나의 성가대이니까요.
같이 생각하고픈 글을 하나 덧붙입니다.
사랑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며, 우리가 연인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관심이 사라진다면 사랑도 이미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답니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더 이상 없다면...
관계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증오와 무관심 중 무엇이 더 무서우냐고 묻는다면,
언젠가 사그라질 증오보다 영원히 무감각할 무관심이 더 두렵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무관심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잔인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상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없으며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