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하느님 나라의 세 모습: 보물, 진주, 그물

2008. 7. 29. 오전 9:52:53

글자
 
 마태오 복음 13장에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여러 가지 비유들이 나옵니다. 17주일 복음에도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비유를 끝맺는 말씀"은  아무래도 수수께끼 같아 이해하기가 좀 어렵네요.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이 비유 이야기의 "결론"이고, 비유는 "수수께끼"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 하기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구절을 의아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비유"에 관해 몇 가지 일반적인 얘기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 끝에 퀴즈가 있으니 풀어 보시구요.
 
첫째, 비유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퍼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나 이미지가 서로 소통하고 배우는데 필요한 매개인 것 처럼 퍼즐과 수수께끼도 알리려는 것을 낯설게 하거나 당혹감을 가지게 하거나 어느 때는 신비화하는 방법으로 그런 기능을 합니다. 예수의 설교는 이 두 가지가 잘 섞여진 비빔밥 같은 것 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해 인간과 세계의 비의를 설명하려는 종교 전통은 복음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선불교, 이슬람의 수피교, 유태교의 하시딤에서도 두드러 집니다.
 
둘째, 예수는 자신이 선포하는 메씨지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 "충격 요법"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퍼즐이 들어가 있는 비유 이야기 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도 지적한 것 처럼 누구나 금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이건 우리들이 추구하는 다른  진리에서도 마챦가지 아니겠습니까.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실을 드러 내고 그것이 우리를 어떤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끌어 가는지 알리기 위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 사람들이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관습적인 의견을 무장해제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을 듣거나 읽으면서, 어떤 사람은 통찰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매우 혼동되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세째, 예수의 비유 가운데 많은 것들이 놀랍고 충격적인 방식,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끝에 드러나는 이 놀라움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생각해 왔던 방식을 의문시하고 뭔가 새롭고 다르게 이해하는 길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예컨데, 마태오 13장에서는 자주 "시간의 간격"을 사용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합니다. 지금 있는 보잘 것 없는 상태와 앞으로의 예기치 못하는 상태를 대비시키는 것이지요. 이 간격이 클수록 놀라움이 커집니다.
 
전에 읽었던 누룩과 겨자씨 예가 대표적이지요. 겨자씨는 보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작고 성장하기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누룩은 엄청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처음의 보잘 것 없고 냄새나는 출발과 달리 마지막에는 엄청난 일이 생깁니다.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풍성함을 말하려는 것인데, 성장하는 과정이 알려 주듯이 하느님 나라도 생성 중에는 겨자씨 처럼, 이게 언제 다 자랄 수 있나 하는 의혹을 줄 수도 있고 누룩 처럼, 엄청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다가가기 꺼려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이 비유는 초라해 보이는 출발이나 유태교 지배 계급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선포하는 하는 하느님 나라는 결국 끝에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네째, 비유는 그 배경에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 간절하게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를 왜 사람들이 그토록 믿지 못하고 저항하는가? 두 가지 답변이 있습니다: 1) 구약 성서에 나오는 것 처럼, 불순종이나 불신앙도 하느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것. 2) 지금은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척도로 가려질 것이라는 것. 
 
복음서에 나오는 "심판"은 가끔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예수의 비유가 정작 겨냥하는 것은 경고나 협박이라기 보다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악의 현실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오히려 희망의 전언입니다!
 
이런 걸 염두에 두고, 17주일 복음을 보면 이렇습니다:
 
보물과 진주 비유는 같은 구조 입니다. 오래 찿고 있었든 아니든,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고, 그 다음 다른 것들을 다 팔아, 마침내 그것을 삽니다.
 
발견( 기쁨) - 다 판다( 다른 것들은 모조리 상대화 시키는 내적 자유) - 산다 (소유)
 
발견한 것과 사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고 다른 것을 팔더라도 소유하기까지는 간격이 있지요.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본질적으로 미래의 사태입니다. 그것이 있다는 걸 알고 거기에 맞추어 산다해도 지금 당장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 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는 미래의 비젼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그물의 비유도 현재/ 미래의 시간 차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그물엔 선과 악의 구분이 없습니다. 은총의 그물에 들어 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선해" 질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한 번 걸리면, 반드시 "회심"이 필요 합니다. 회심 하지 않으면, "세상의 끝 날"에 모조리 "불구덩이에 던져" 집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처럼, 그물의 비유도 마태오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을 협박하는 말이라기 보다, 영원할 것 처럼 보이는 악의 지배도 마침내 끝나게 되어 있다는 예수의 세계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장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13: 51 - 52).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13장 처음에 예수가 비유로 말한 이유를 기억해 보세요( 13장 10- 14). 예수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당신들에게(즉, 제자들) 어떻게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 주려고 애써 왔습니다. 당신들도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하지만 내 얘기를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알려고 무진 애써도 알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진리인데, 아예 듣기 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 달리 여러분들은 하느님 나라와 성경의 전통에 대해서는 "__________________"  처럼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야기했던 것들을 헌 것이건, 새 것이건, 잘 식별하여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어야만, 내가 비유로 말했던 하느님 나라에 관한 놀라운 결말들을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해 왔던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니 "내가 당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28장 20절) "_____________"가 되십시오!"
 
 
 
"--------------------"에 알맞는 말을 넣어 보세요. 답은 두 가지인데, 위의 성서 구절 안에 있습니다. 미사 시간에 말씀 드린 것 처럼 맞추시면 선물을 드리지요!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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