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대축일
(09월18일)
오늘은 한국 순교성인 대 축일이고 아울러서 성 남요한 우리 본당 주보 성인 축일 입니다.
오늘은 이 모든 분들이 다 순교 하셨습니다.
오늘 성서 대로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
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이 말씀을 우리
는 오늘 순교 성인들의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순교란 말은 여러분도 잘 알지만 라틴 말 “마르티리” 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마르티리 란 말은 증거하다, 증거자, 증언하는 사람이다, 증거자란 뜻입니다.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람,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증
거해 보이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우리 조국 한국에 1784년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와서 약 100년 동안 박해를 받고 약 1만 명 가까이 순교 하셨
습니다.
이 분들 중에, 이 분들 중에 103명을 1984년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우리 한국에 가셔서 성인품에 올리셨습
니다.
바로 오늘이 신앙을, 즉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돌아가신 약 만 명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의 신앙
을 본받기 위한 날입니다.
정말 오늘 정말 뜻 깊은 날입니다.
만 명이 거의 팔 년간에 돌아가셨으니까 일년에 천 명씩, 하루에 3,4명씩 순교 하신 거고, 매일 십 년 동안에
하루에 3,4명씩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생각만 해 보세요
그것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라, 갖은 고문을 한 다음에 죽였습니다.
신사적으로 칼로써 목을 벤다든지 총을 쏴서 죽이지 않고 밧줄로 톱을 만들어서 목을 벤다든지, 또 양쪽에
소를, 양쪽 다리에 소를 달아서, 소를 붙여서 몸을 찢어서 죽인다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인두를 달여서 지져
서, 그것도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죽인다든지,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오늘날에 와서는 인권을
존중 이라서 다 감옥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그 때 사람들 남아서 오늘 재판 받으면 임금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다 감옥에 갈 사람들이예요.
이렇게 처참하게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순교자들은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물론 아픔의 고통이 있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순교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순교를 하는 것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순교하는 것이 신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교하는 영광을 얻기를 바랬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한국에 만 명 가까이 그렇게 순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순교하는 것을 굉장히 신앙의 영광으로 울려가도록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자신의 신앙을 한번 봅시다.
우선 내 자신의 신앙부터 한번 되돌아보면 조금만 어려우면 성당에 빠질 궁리를 하고, 조금만 어려우면 비
난하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함부로 이야기하고…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정말 내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기도 합니까?
그냥 억지로 땜질하는 기도, 그것도 빠지기가 일쑤고, 또 교회에 내놓는 어떤 헌금이나….
보세요, 얼마나 인색합니까?
정말 한번 깊이 생각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날입니다.
예수님도 신앙의 증거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순교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순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심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가를 우리에게 증거로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었다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직도 우리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십자가 위의 죽음은 하느님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증거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늘 복음에 보면 “너희들도 나와 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내 제가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우리들도 모두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는 증거자가 됩시다.
순교자가 됩시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예비자 교리를 오랫동안 우리가 가르쳤던 가톨릭 교리 문답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낳느뇨?”
들었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세요.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느뇨?”
뭐라고 대답했어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즉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 그리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바로 순교자들은 가장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한 사람들이고 자기를 구원하신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
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
니다.
이 세상의 이익을 이 세상의 성공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이 세상에서 죽으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으라는 말입니다.
제가 신학교 갈 생각을 하고 난 다음 정말 내가 이 세상에서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죽어야
되는지 잘 몰랐어요.
어떻게 죽어야 될지 몰랐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어떻게 죽어야 되는지 몰랐는데 그래서 잠자리에 침대 밑에, 이부자리 밑에
뾰족뾰족한 돌을 갖다 놓던지, 가시를 놓고 자는 것, 이런 것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뭘 모르고 그렇게도 하는 사람이 있고 저도 해봤습니다마는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닥쳐오는 어려움들을 내가 기쁘게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마침 이 오늘 순교성인주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이번 주일에 저한테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저한테 준 것
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방에서 재치기를 했는데 허리가 아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제가 허리가 아파요.
제가 허리가 옛날에 몇 번 아팠기 때문에 허리에 디스크가 온 거예요.
그 자리에 주저 앉았어요.
주저 앉아서 얼마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겨우겨우 일어나서 이제 만지고 해 가지고 나와서 미사를 드렸습
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아! 하느님이 왜 이렇게 나한테 이런 걸 주느냐?
내가 사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하는 이 말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신자들에게 어떻게 마음에 닿도록 설명을 해야 될까?
일 주일 동안 계속 묵상하고 생각했는데 방법이 없어요, 잘 못하겠어요.
못해가지고 고민하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디스크가 나서 허리가 아파서 딱 주저 앉았다가 일어나고 나서
아! 바로 이렇게 닥쳐오는 고통을 잘 참으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합니다.
닥쳐오는 고통, 저는 허리가 아팠습니다마는 여러분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마 여러분들 남모르
게 많은 고통을 받을 거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대로 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 고통을 짊어지라는 뜻입니다.
버리려 하지 말고 짊어져야 된다…
자기에게 닥치는 이 고통과 변고를 버리려고 하지 말고 짊어져라, 가져라, 내 것으로 만들어라.
지난 번에는 제가 여러 번 디스크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굉장히 아프고 힘들어 한 2주 동안 거의 한 달, 어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오래 안 가는 것 같아요.
아직도 아프기는 하지만 내 것으로 만드니까, 내 십자가로 생각하고 내가 받아들이니까 고통이 그렇게 괴롭
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고통도 내가…
이왕 고통이 나한테 주어진 것이니까…
바로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십자가의 신비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닥쳐오는 고통과 어려움을 내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십자가를 지는 것, 모든 시련을 내가 받아 들여서 이 세상에서 죽는 것, 내 자신이 죽는 것입니
다.
그래야 다시 내가 살아 나는 것, 다시 행복과 기쁨이 나한테 주어진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닥쳐오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느님을 위해서 죽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고통과 어려움을 기쁘게 받아 내면 사람들이 다 생각할 거예요.
네가 왜 그렇게 하느냐?
나는 하느님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이 고통을 기쁘게 받아 들
인다….
사실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통입니다. 고통을 받아 들이면, 기쁘게 받아 들이면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부인이 그 어려운 가정사를 그 고통을 기쁘게 받아 들이고 웃으면서 받아 들인다면 남편이
얼마나 부인이 사랑스럽겠습니까?
남편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 고통을 받아 들이는 일,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걸 이야기 드립니다.
바로 순교자들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좋은 표현으로 표
현해 주신 분들이 바로 순교자들이시다.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순교이고 신앙 생활이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고
바로 순교라는 것을 우리가 오늘 묵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닥치는 고통과 어려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
로,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