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믿음(0729 성녀 마르타 기념일)

2015. 7. 29. 오전 8: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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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9 성녀 마르타 기념일


요한 11,19-27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사랑과 믿음>


누군가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여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사랑한다.’ ‘믿는다.’ 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사랑과 믿음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대상, 믿음의 대상은 크게 하느님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믿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믿음을 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의 고백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타가 고백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곧 오빠인 라자로에 대한 사랑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르타는 오빠의 죽음으로 깊이 상심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 앞에서 마르타는 오직 예수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 죽은 오빠를 살려내라고 억지를 부리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오빠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고백이고, 바로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사랑하는 오빠와 다시 만나고픈 간절한 염원의 표현입니다.


마르타에게 있어서 오빠의 죽음은 단지 절망적인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굳은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신앙 고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빠에 대한 마르타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마르타의 굳은 믿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르타의 사랑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마르타와 라자로의 관계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소생시킴으로써 이 관계를 다시금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빠 라자로에 대한 마르타의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아름다운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상대방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좋은 관계로 바꿔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인내를 가지고 예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려봅시다. 부모님일수도 있고, 자녀들일수도 있습니다. 친한 친구나 교회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믿음의 벗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를 뒤로 하고 과연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짚어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여전히 갈등을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기에 마음 한 구석에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남아 있습니까? 그러면 됐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우리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요한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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