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오늘의 성인♡

2016. 5. 3. 오전 7:04:54

글자

♡5월 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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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네오폴로(Neopol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카일레스티누스(Caelestinus)

축일 5월 2일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는 로마(Rome)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성인전 작가들은 그가 순교한
장소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성 네오폴루스(또는 네오폴로),
성 게르마누스(Germanus) 그리고
성 카일레스티누스(Caelestinus)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 외에 이 성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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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데미알리스(Vindemiali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론지누스(Longinus)

축일 5월 2일 

아프리카의 주교인 성 빈데미알리스(Vindemiali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론지누스
(또는 론지노)는 반달의 아리우스파(Arianism)
국왕 후네릭에 의해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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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팔다(Mafalda)

축일 5월 2일 

포르투갈 국왕 산초 1세의 딸인 성녀 마팔다는 12세 때에
카스티야(Castilla)의 헨리쿠스 1세(Henricus I)와
결혼하기로 하였으나, 국내 사정으로 인하여 다음 해로
연기되었다. 이때 그녀는 아루카의 베네딕토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당시의 그 수녀원은 규율이 너무
느슨하였으므로 그녀는 시토회의 규칙을 도입하여
엄격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또한 그녀는 오포르토 대성당을 재건하였고,
순례자의 집을 세웠으며, 탈메다의 다리를 건설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윽고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알고는 재 위에 누워
임종을 맞이하면서
“주님, 당신 안에 있기가 소원이나이다.” 하는
말을 남기고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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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데베르토(Waldebert)

축일 5월 2일 

뤽세이유 수도원의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후계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이 곧 제3대
원장이었던 성 발데베르투스
(Waldebertus, 또는 발데베르토) 원장이다.
그는 프랑크 귀족으로서 군인이었으나,
성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에게 이끌려
무기를 버리고 모범적인 수도자로 변신했던 것이다.
그는 수도원에서 조금 떨어진 움막에서 독수자로
살다가 자기 스승의 사후에 제3대 원장으로
선출되어 40년 동안이나 지혜롭게 수도자들을
보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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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비보라다(Wiborada)

축일 5월 2일 

성녀 비보라다는 스위스의 클링냐(Klingna)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어로는 귀보라(Guiborat),
독일어로는 바이브라트(Weibrath)라고 부른다.
그녀는 슈바벤(Schwaben)의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부모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 한 명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그녀도 장크트갈렌(Sankt Gallen) 수도원의
수도복을 입었고, 수도원 도서실의 수많은 책을
장정하는 일을 하였다. 양친의 사망 후
그녀는 사제인 오빠에게서 라틴어를 배웠으며,
성무일도를 함께 바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이들 남매의 집은 일종의 구호소였다.

그 후 그들은 로마(Rome) 순례를 하였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은수생활을 꿈꾸고 장크트갈렌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다가,
915년경부터 성 마뇨(Magnus) 성당 곁에 있는
움막에서 살았다. 여기서 그녀는 많은 예언과
기적을 베풀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그녀는 헝가리인의 침략을 예언했는데,
장크트갈렌의 수도자들은 그녀의 말대로 피신했으나
자기 자신은 움막에서 그대로 살다가 그들의
손에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04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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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축일 5월 2일 

아마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 출신으로
여겨지는 성 아타나시우스(또는 아타나시오)는
잘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특히 성서와 신학이 뛰어났다.
318년 부제로 서품된 후 자기 고향의 알렉산데르
주교의 비서가 되었다.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했던 325년의 제1차 니케아 공의회
(Council of Nicaea)에 알렉산데르 주교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3년 뒤인 328년 4월 17일 알렉산데르
주교가 사망한 뒤 그 자신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이집트 아리우스파의 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이러한 반기는 지중해 제국 전역으로
무섭게 파급되었고, 아리우스를 지원하던 멜레티우스
(Meletius) 이단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물론 이런 세력 뒤에는 콘스탄틴 대제의 지원이
있었다. 그는 335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첫 번째 유배되었다.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틴 대제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새 황제는 아타나시우스에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뒤 다음 해에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직위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반대파에 의해 2년 후 재차
추방되었다. 이 때 그는 로마(Rome)로 가서
7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346년부터 356년까지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는
가장 평화로운 황금의 시간이었고 또 그의 주요
저서들도 이때에 나왔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그를 추방키로 하고 군인들을
보냈다. 체포 위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의 사막 은수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콘스탄티우스가
361년에 죽기까지 자기 교구민들을 지도하였다.
그 이후에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두 차례나
유배를 더 당하였고, 366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평화롭게 자기 교회를 다스리고 사목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날의 모든 갈등과 폭력으로 인하여
피폐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는데 주력하면서, 저술과 강론을 통하여
위대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신체적 조건으로 볼 때는
작은 사람이었으나 아주 강인하고 정신력이
뛰어났다.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파문하기로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평신도들도 우왕좌왕하였고,
수많은 주교들도 주저하였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존 헨리 뉴만의
말대로, “그리스도 교회의 거룩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 온 사도들의 후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도구였다.” 아리우스 이단을 대항하여
저술한 그의 뛰어난 저술과 연설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비롯하여 성서 주석, 시편 주해 등을 남겼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대 바실리우스(Basilius),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그리고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와 함께 그리스의 교회학자이자,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배 중에 저술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에게 보낸 해명”
(Apologia ad Imperatorem Constantium),
“수도자들에게 보낸 아리우스주의의 역사”
(Historia Arianorum ad Monachos) 등이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아타나시우스 신경’
(Symbolum Athanasianum)을 직접 기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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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엑스수페리오(Exsuperius)

성녀 조에(Zoe)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테오둘루스(Theodulus)

축일 5월 2일 

성 엑스수페리우스(또는 엑스수페리오) 혹은
헤스페루스(Hesperus)와 그의 아내인 성녀
조에(Zoe)는 카탈루스라고 부르는 어느 부자의
노예였으며 소아시아의 팜필리아에서 살았다.
그들은 태중 교우로서 두 아들, 즉 성 키리아쿠스
(Cyriacus)와 테오둘루스(Theodulus)를 두었다.
그런데 그들의 주인이 이 아이들의 생일을 기하여
신전에 희생을 드리라는 명을 내렸을 때 이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 부부가 그들의 신앙을 용감하게 고백하자
형리들은 부모 앞에서 아이들을 잔인하게 고문하여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결국 이렇게 해서
가족 전부가 순교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가 이들을 위하여
콘스탄티노플에 성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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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울탄(Ultan)

축일 5월 2일 

성 푸르세우스(Furseus, 1월 16일)와 성 포일란
(Foillan, 10월 31일)과 형제지간인 성 울탄은
아일랜드의 수도자로서 이스트 앵글리아로 가서
버그(Burgh) 성(城)을 세웠으나 머시아(Mercia)
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프랑스로 피신하였다.
그는 성녀 이다(Ida, 5월 8일)와 성녀 게르트루다
(Gertrudis, 3월 17일)가 제공한 땅에 포시스
(Fosses)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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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위보라다(Wiborada)

축일 : 5월 2일

성녀 위보라다는 스위스의 클링노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어로는 귀보라(Guiborat),
게르만어로는 바이브라트(Weibrath)라고
부른다. 그녀는 스바비아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부모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 한분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그녀도 쌩 갈의 수도복을 입었고,
수도원 도서실의 수많은 책을
장정하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양친의 사망후,
그녀는 사제인 오빠에게서 라틴어를 배웠으며,
성무일도를 함께 바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이들 남매의 집은 일종의 구호소였다.
그후 그들은 로마 순례를 하였다.
그후 그녀는 은수생활을 꿈꾸고 쌩 갈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다가, 915년경부터
성 마뇨 성당 곁에 있는 움막에서 살았다.
여기서 그녀는 많은 예언과 기적을 베풀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그녀는
헝가리인들의 침략을 예언했는데,
쌩 갈의 수도자들은 그녀의 말대로 피신했으나,
자기 자신은 움막에서 그대로 살다가
그들의 손에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04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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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르마노(Germanus)

축일 5월 2일 

아일랜드(Ireland) 또는 웨일즈(Wales) 출신 중에서
노르망디의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라는
이름을 가진 성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성인의 존재 자체는 사실이다.
오늘 기념하는 성인은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7월 31일) 주교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에 의해 개종했으며 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정했다
오늘 기념하는 성인은 성 파트리키우스
(Patricius, 3월 17일)와 함께 주교로서 사목했으며
웨일즈, 에스파냐, 갈리아 지방 그리고 맨 섬
(the Isle of Man)을 복음화 했다고 주장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성 게르마누스가 맨 섬의 사도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는 노르망디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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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콘라도(Conrad)

축일 5월 2일 

스위스 중부의 유명한 엥겔베르크(Engelberg)
대수도원의 건설자인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셀덴뷔렌 귀족 가문 출신으로 대부분의 유산을 수도원
건설에 희사하였다. 이것은 그가 성모 마리아를 환시로
보고 그 계시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건설은 다소 장애가 생겨 지연되었으나 완공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 후 그는 세속을 떠나
성 아델렐무스(Adelelmus)로부터 수도복을 받고
평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원장의 부름을 받고
취리히로 향하던 중에 그를 미워하던 사람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성 콘라두스의 유해는 엥겔베르크에
안장되었으나 수도원이 불탔던 1729년까지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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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5월 2일 

성 펠릭스 부제는 아마도 에스파냐 세비야에서
순교했으며, 그곳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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