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오늘의 성인♡

2016. 4. 28. 오후 9: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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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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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1347-1380)

축일 : 4월 29일

가타리나는 '순수한'이란 뜻이다.

가타리나가 자신의 짧은 인생에서 중심으로
삼았고, 또 자신의 모든 생활 체험에서
분명하고도 끊임없이 확신한 가치는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배운 점이다.
그녀는 야고보 베닌카사의 스물세 번째
아이로서 영리하고 명랑하고 깊은 신앙을
지닌 사람으로 자랐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부모에게는 걱정거리이지만 카나리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외모를
가꾸어야 한다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머리를 잘라 버림으로써
어머니를 실망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아내에게 그녀를 편안히 지내게
해주라고 명령했으며, 기도와 묵상을 하도록
그녀에게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그녀는 16세에 도미니코 제 3회에 들어가
그 후 3년 동안 격리되어 기도와 엄격한
생활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무리의 추종자들-남자,여자,사제,
수도자들-이 그녀의 주의에 모여들었다.
그녀의 관상생활로부터 공적이고
활동적인 사도직이 성장해 나왔다.

그녀의 편지 대부분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준 영적 교훈과 격려였지만
점차 공적인 일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두려움 없이 세상일에 참여하고
완전히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의
솔직함과 권위를 가지고 말함에 따라
그녀를 반대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녀는 1374년 도미니코회 총회에서
모든 책임을 벗어 버렸다.
그녀의 공적 영향력은 그녀의 뚜렷한
성덕과 도미니코회 회원이라는 점,
그리고 교황에게 준 깊은 인상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힘이 미쳤다.
그녀는 터키 인들에 대한 십자군과
풀로렌스와 교황 사이의 평화를 위해서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1378년에 대분열이 일어나 처음에는 두 명,
나중에는 세 명의 교황들이 그리스도교계의
일치와 충성을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성인들까지도 적대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4월 5일 성빈첸시오 페레르 참조)
카타리나는 마지막 생애의 2년을 로마에서
교황 우르바노 6세와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도와 탄원으로 보냈다. 그녀는
고통중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그녀는 그녀의 영적
'자녀들'에게 둘러싸여 운명하였다.
1461년 4월 29일 에 시성되었고,
1939년에는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주보 성인으로 공인되었다.
그리고 1970년 10월 4일에 바오로 6세는
교회 박사로 선포했다.
카타리나는 교회의 영적 저술가와 신비가들
가운데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가 남긴 영적 증언은 '대화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설명 :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우리 시대와는
아주 다른 영성과 신앙체험 가운데서 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 안에 육화되어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산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생애는 우리를 움츠러 들게도
하고 웃음짓게도 하며 때로는 따분하게 만드는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즉 여섯 살 때에 겪은 신비체험, 그리스도와의
어린이다운 약혼, 엄격한 금욕 생활 이야기,
잦은 탈혼 상태에서의 환시 등이다.
그러나 카타리나는 유동적이고 급변하는
20세기에 산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카타리나의 일생이 주는 가치는
일생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서 성덕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인용 : 카타리나의 '대화집'에는 네 가지
논술이 들어 있다.
영적세계에 대한 신앙의 증언이다.
"그 누구도 자기가 크나큰 참회를 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다른 사람보다 육신의 절제를
지나칠 만큼 잘한다고 해서, 그것이 덕도
되지 않고 공로도 되지 않는 한 더욱더
큰 완덕을 얻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른 어떤 합당한
이유 때문에 현재 참회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공로라는 것은 참된 분별력에 비추어
맛들인 사랑의 덕에만 있는 것으로서
그것이 없다면 영혼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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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쿠, 개종자(5세기경)

축일 : 4월 29일

그는 월스터 두목의 아들로서, 카운티 다운의
러케일국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성 바드리시오가 432년에 아일랜드로
상륙하였을 때 그를 극렬히 반대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는
아일랜드의 첫번째 개종자가 되었고,
그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그는
성 바드리시오의 아일랜드 첫번째 전초기지가 된
서울에 성당을 지어 주었으며, 이들 두 사람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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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베르토, 원장(1110년 순교)

축일 : 4월 29일
로베르토는 '영광과 빛'이란 뜻이다.

프랑스 상파뉴의 트로이스 교외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 집안의 자손이다. 15세 때에 그는
무시에르-라-셀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을 마친 뒤에,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성 미셸 수도원장이 되어 그 수도원의
개혁을 주도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으며,
교황 알렉산델 2세가 그를 은수자 그룹의
원장으로 지명하였다. 그 후 그는
몰레스메스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공동체 회원들이 성덕이 날로 떨어지므로,
그와 성 스테파노 하르딩 그리고 성 알베릭 등은
그 수도원을 떠나, 성 베네딕토의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는 수도원을 시토에다 세웠다.
그 후 그는 다시 교황의 부름에 따라
몰레스메스 수도원 개혁을 주도하여
성공한 뒤에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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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peter)

축일 : 4월 29일

베드로는 '돌, 반석'이란 뜻이다.

베로나에서 태어난 성 베드로 순교자는
당시 성행하던 카타리 이단에 속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카타리 이단은
세상의 물질이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음을
부인하는 주장을 강조하며 다녔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가톨릭 학교를 다녔는데,
사도신경에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에 대한 의문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비로소 모든 의심을 제거하여 도미니칸이
되었는데, 성 도미니코가 직접 그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곧 그는 롬바르디 전역을
누비는 뛰어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그를
밀라노 지역의 총심문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함과 아울러
볼로냐, 크레모나, 라벤나, 제노아, 베니스
그리고 안코나의 마르카 지역까지 설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는 자주
순교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하였는데,
과연 그는 자신의 설교에 반감을 품은
살인자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이때 흘린
그의 피는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46세의 나이로
순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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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리드-젊은- (Wilfrid)

축일 : 4월 29일

성 베다의 기록에 따르면,
성 윌프리드는 성 힐다의 규칙을 따르는
휘트비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비벌리의 성 요한의 제자가 되었다.
그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능력은
크게 돋보여 성 요한의 오른팔이 되었고,
요한이 은둔소로 물러갈 때에 그가
요크의 주교로 임명된 것이다. 그는 주로
신자들의 교육사업에 정성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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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Hugh)

축일 : 4월 29일

부르군디의 세무르 백작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5세 때에 프랑스의 클뤼니에 있던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5년 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가 25세에 불과하였지만
1049년에 성 오딜로를 계승하여 원장이 된 것이다.
그는 라임스의 공의회에 참석하여
교황 레오 10세의 개혁정책을 놀라운 웅변으로
지지하였고, 성직매매를 근절시키고 성직자의
규율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그는 교황 레오와 함께 로마로 와서는
뚜르의 베렌가리오 이단을 단죄하는 시노드에
참석하고, 1057년에는 교황대사로 임명되어
프랑스의 앙리 4세와 헝가리의 앤드류 사이의
평화 협정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교황 니콜라오 2세를 도와서 교황 선출에 관한
칙령을 작성하는 등 교회사에 남을 큰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는 심리적인 직관과 외교적인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고
더욱 위대한 사람이 된 분들은
성 베드로 다미아노,
성 그레고리오 7세 등이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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