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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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닐로(Nilus)
축일 4월 7일
닐 또는 러시아에서는 소르스키라 부르는
성 닐루스(또는 닐로)는 농부 출신이다.
그는 러시아의 벨로에 호수와 가까운 벨로제르스크의
수도자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아토스 산으로 가서
수도회 규칙과 신비주의를 깊이 연구하였다.
원래의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소라 강 가까이에
암자들을 짓고, 그곳에서 그리스 신비주의 저서들을
연구 번역하였다. 그는 특히 자유와 관대함을
사랑하던 사람이었기에 종교의 형식주의, 과장 등을
배격하였고, 수도자의 가난에 대한 그의 이상은
지나칠 만큼 엄격하고 실천적이었다.
수도자는 자기의 땅을 가질 수 없고, 예배소는
하느님의 선성이 흐트러지지 않는 곳이면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는 무소유자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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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성 도나토(Donatus)
성 루피누스(Rufinus)
축일 4월 7일
아프리카의 주교 성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와 성 루피누스(Rufinus)를
비롯해서 13명의 자신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은 우수아르두스(Usuardus)의 순교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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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드워드 올드콘(Edward Oldcorne)
성 랄프 애슐리(Ralph Ashley)
축일 4월 7일
요크(York) 출신인 에드워드 올드콘(Edward Oldcorne)은
프랑스의 랭스(Reims)와 이탈리아의 로마(Rome)에서
6년 동안 공부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영국 선교에 강력한 희망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제랄드 신부와 함께 영국에 상륙하였으나,
도착하자마자 헤어져서 우스터(Worcester)로 갔다.
그는 이곳에서 거의 17년 동안이나 홀이란 가명으로
열렬하게 활동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을 멀리했던 수많은 국교 신자들을
다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들 중에는 엘리사벳 여왕 시대의 귀부인이던
도로테우스 아빙톤이 유명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배교자의 밀고 때문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또한 에드워드 올드콘의 동료인 랄프 애슐리는
예수회의 평수사로서 에드워드 올드콘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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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빌리암
쿠피텔라(William Cufitella)
축일 4월 7일
빌리암 쿠피텔라(William
Cufitella)는 원래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으로 살다가
시칠리아(Sicilia)의 쉬클리 근교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움막에서 기도와 극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70여 년을 살았다. 그는 주로 자신이
심고 거둔 채소를 먹었다. 또한 그는 인근의 환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잠깐씩 은둔소를
비운 적이 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영적 지도와 권고를 받았고,
피아첸차(Piacenza)의 성 콘라두스(Conradus)와
가깝게 지냈다.
빌리암은
95세의 일기로 선종했는데 이상한 종소리를
듣고 쉬클리 주민들이 그의
은둔소에 가보니
성인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숨져 있었고,
그 위로 천상의 빛이 내리비치고 있었다고 한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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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축일 4월 7일
성 사투르니누스(또는
사투르니노)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로 그에 대해 알려진
다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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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이베르토(Aybert)
축일 4월 7일
벨기에 투르네(Tournai)의
에스페인에서 태어난
성 아이베르투스(또는 아이베르토)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섬기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 어린 아이는 밤중에 침대에서 일어나 부모
몰래 기도하러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어느 날 어느 음유시인이 프로뱅(Provins)의
성 테오발두스(Theobaldus) 은수자의 삶을
노래하는 광경을 보고 그의 마음속에도
그 은수자를 본받으려는 열정이 불같이 타올랐다.
그래서 그는 성 크리스피누스(Crispinus) 수도원
소속의 어느 사제와 함께 엄격한 보속생활과
기도생활을 맛들이기 시작하였다.
한번은 이 수도원의 원장이 두 사람의 은수자를
뽑아서 함께 로마(Rome)로 갔는데 이때 그들은
맨발로 떠났다. 이 여행 후에 그는 수도원의
재정을 맡았으므로 자선을 베풀 기회가 많아지자
더욱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주교와 신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캉브레(Cambrai)의 주교 부르카르두스
(Burchardus)는 사제직을 제의하였다.
특히 묵주기도의 기원이 성 아이베르투스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이 성인은 성모송
한 번에 한 번 엎드려 절하는 방법으로
성모송 50번을 계속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전 시편을 50번씩 암송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러한 기도 역시 묵주기도와 많은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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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프라아테(Aphraates)
축일 4월 7일
외교인 집안인 출신인 성 아프라아테는 페르시아
국경 쪽의 시리아에서 태어나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에데사(Edessa)에서
엄격한 생활을 하는 은수자가 되었다.
그런 후 얼마 동안은 은둔소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은둔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다. 그의 높은 성덕을 알아차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충고를 들으려
하였으며,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전한다.
그는 공식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반대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이 아프라아테가 곧 메소포타미아 모술
근교의 마르 마타이 수도원의 주교이자,
336년과 345년 사이에 23편의 논문이 들어있는
“논증”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한다.
이 논증은 시리아 교회의 가장 오래된 고문서들이며,
‘페르시아의 현인’으로 알려져 있는 사푸르 대왕의
손에서 박해를 견디어낸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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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산데르
롤링스(Alexander Rawlings)
축일 4월 7일
알렉산데르 롤링스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서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서 태어나서
프랑스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59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영국 선교사로
파견되어 요크(York)에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는 성 헨리쿠스 월폴(Henricus Walpole)과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서 먼저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
(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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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축일 4월 7일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은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
(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
(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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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우르술리나(Ursulina)
축일 4월 7일
이탈리아의
파르마(Parma)에서 태어난 우르술리나는
어릴 때부터 환시와 탈혼을
경험하였고,
불과 15세의 나이로 초자연적인 어떤 음성을 듣고
아비뇽(Avignon)으로 가서 대립교황 클레멘스
7세
(Clemens VII)에게 교황좌를 포기하도록
설득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그녀는 로마(Rome)로 가서
교황 보니파티우스 9세(Bonifatius IX)의 퇴위를
요구하고 또 다시 아비뇽으로 가서 클레멘스 7세의
퇴진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후 로마와 성지를 순례한 그녀는 파르마로
돌아왔으나 그곳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봉기로 인하여
추방되어 잠시 볼로냐에 머물다가 베로나(Verona)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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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오르지오(George)
축일 4월 7일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자신의 재산을 병자와 가난한 사람 구제에 희사한
뒤에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미틸레네의 주교가 되어
레스보스(Lesbos) 섬의 교회를 지도하였다.
그의 애긍시사는 놀라울 정도였고 또 누구에게나
순종하는 자세로 일생을 살았다.
그때에는 성상파괴주의자가 성행하고 득세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이에 항거하다가 체르소네즈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불치병의 치유자이며
악령을 내쫓는 주교’로 높이 공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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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리아코(Cyriacus)
축일 4월 7일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는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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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리오포(Calliopus)
축일 4월 7일
성 칼리오푸스(또는 칼리오포)는
실리시아(Cilicia)의
폼페이오폴리스(Pompeiopolis)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에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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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레우시오(Peleusius)
축일 4월 7일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펠리우시우스
(또는 펠리우시오)는 알렉산드리아의 신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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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난(Finan)
축일 4월 7일
아일랜드 남서부
먼스터(Munster)에서 6세기에 태어난
성 피난은 성
브렌다누스(Brendanus, 5월 16일)의
제자였다. 그는 스승의
뜻대로 아일랜드
오팔리(Offaly)의 키니티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그는 또한 핀니안(Finnian)으로도
불리며, 키니티 수도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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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
축일 4월 7일
독일 쾰른(Koln)에서
출생하여 헤르만이란 세례명으로
불렸던 성 헤르만 요셉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당에서 성모님과 예수 아기 성상 앞에 꿇어
엎디어 자주 대화하곤 하였다. 한 번은 성모상의
성모님께 사과 하나를 드렸는데, 그 성모님이
손을 뻗어 받으셨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아기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놀기조차 하였다.
12세 때에 그는 스타인펠트(Steinfeld)에 있던
프레몽스트레회에 입회하였으나 너무 어려서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로 공부하러
보내졌다. 여기서 그는 세속 문학을 공부하는데
큰 흥미를 보였다.
한
마디로 그의 일생은 흠잡을 데 없이
순진무구하였고, 수많은 신비적 체험을
하여
신비가로서 유명하였다.
또한 그는 성녀 우르술라(Ursula)에게 바치는
찬미가를 썼고, 예언서에 흥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단식과 고행으로 자신의 건강을 크게
해친 결과 1241년 4월 7일 스타인펠트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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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제시포(Hegesippus)
축일 4월 7일
유대인으로 태어나 예루살렘 교회에서 활동한
성 헤게시푸스(또는 헤제시포)는 로마(Rome)로
여행하면서부터 그곳에서 약 20년간을 살았다.
그는 도처에 다니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치를
호소했고, 그리스도의 수난부터 당대에 이르는
교회사를 기술하여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
(Eusebius)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사도들의 정신이 충만한 분이고, 겸손을
사랑하신 성인이다. 그분만큼 단순함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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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헨리코 월폴(Henry
Walpole)
축일 4월 7일
성 헨리쿠스
월폴(Henricus Walpole, 또는 헨리코 월폴)은
1558년에
영국 잉글랜드(England) 동부 노퍽(Norfolk)의
도킹(Docking)에서 태어났다. 그는 법률을 공부할
목적으로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던 중,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의
순교를 목격하면서 교회와 화해하였다.
그는 즉시 법률 공부를 중지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랭스(Reims)로 갔고, 1584년 로마(Rome)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4년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처음에 선교사로서 프랑스 로렌(Lorraine)과
네덜란드 지방을 순회하면서 캘빈주의자들과 격론을
벌였고, 이 때문에 1년 동안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영국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요크(York)의 감옥과
런던탑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알렉산데르 롤링스
(Alexander Rawlings)와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알렉산데르가 먼저 순교하고
헨리쿠스는 그 뒤를 이어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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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아쏜따 빨로따,(M.Assunta Pallotta )
축일 : 4월 7일
이탈리아 태생인 마리아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회 수녀로서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운명하였다.
1904년
3월 19일 중국으로 파견된 마리아 아순따는
1905년 스물 여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늘 모든 것에 만족하고 겸손하고 평온하였던
그녀는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순수한 지향과 겸손이 널리 알려져
1954년 11월 7일
시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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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첼소(Celsus)
축일 : 4월
7일
체알라크 막 에다라 불리웠고, 평신도였다.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1105년에 아르마그의
주교로 계승하여, 주교로 승품받았으며,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교구 내의 제도를
수 없이 개혁하고, 매우 훌륭히 관리하여 이름을 남겼다.
그는 또 심히 우려되던 아일랜드파당 사이를
중재하였고, 성 말라키의 친구였으며, 자신의
사후에는 말라키가 주교직을 승계하도록
배려한 뒤에 은퇴하여, 아르드패트릭에서
4월 1일에 운명하였다.
♡4월 7일 오늘의 성인♡
2016. 4. 8. 오전 6:47:06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