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오늘의 성인♡

2016. 4. 7. 오후 1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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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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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er)

축일 : 4월 4일
베드로는 '돌, 반석'이란 뜻이다.

프랑스의 국왕 필립 1세가 그의 아내 베르타와
인연을 끊고 수도원으로 들어왔을 때,
성 베드로가 그 수도원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왕의 입회는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켜
시노드까지 열렸는데, 이 시노드는 왕의
불법적인 이혼을 따지고 그를 파문하였다.
그후 그는 로마로 가서 이 판결의 부당성을
호소하였지만, 고위 성직자들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후 그는 쇼비니 성으로 유배 되었다가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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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가토뽀(agathopus) 부제와
성 테오둘로(theodulus)교리교사

축일 : 4월 4일

테오둘로는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다.

데살로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던
아가토뽀 부제와 테오둘로 교리교사는
막시미아노 황제의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총독 파우스띠누스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받은 후, 목에 돌을 매단채로
물속에 집어 넣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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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시도로 (Isidorus)

축일 : 4월 4일

이시도로는 희랍어로 '선물'이란 뜻이다.

근 76년간에 걸친 이시도로의 생애는
스페인 교회가 갈등과 성장을 겪는 시기였다.
서고트족이 이시도로가 태어나기
바로 1세기 반 전에 침입해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이단인 아리안파였다.
그래서 스페인은 둘로 분열되어
한쪽 백성(로마 가톨릭)이
다른 백성(아리안파인 고트족)과 투쟁하게
되었다.

이시도로는 스페인을 재통일하여 그곳을
문화와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고,
그들의 문화가 야만족의 침입으로 위협받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안내자가 되고
스승이 되게 하였다. 그의 집안에는 그 외에
다른 3명의 성인들이 있다. 이시도로는
카르타헤나에서 태어나 형으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는데, 바로 이 형으로부터
세빌리아의 주교직을 이어받았다.

매우 풍부한 학식을 지닌 그는
'중세기의 스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쓴 백과 사전이 9세기
동안이나 교과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교구에 신학교를 세우도록 했고
수도원 규칙을 만들었으며,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들을 세웠다. 이시도로는
수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에는 사전과
백과 사전 외에도 고트족의 역사,
창조로부터 시작한 세계의 역사 등이 있다.
그는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모자라빅 전례를 완성하기도 했다.

그는 거의 80세가 될 때까지도 쉴새없이
계속 일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6개월 동안에
그는 애덕을 더욱 발휘하여 그의 집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가난한 사람들로 큰 혼잡을 이루었다.

설명 : 혼란한 지금의 우리 세계에서도
학문과 성덕을 겸비한 이시도로의 정신을
훌륭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학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분열된 백성을 치유하여
다시 합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시도로 시대의 스페인의 침략자들과
같은 야만인들이 아니다. 그러나 풍요로
살이 찌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압도된
백성은 서로를 위한 사랑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상실할 수 있다.

이야기 : 이시도로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이시도로보다 약 20세나 많은 형 레안드로는
그의 스승으로서 요구가 대단히 많았다.
어느 날, 이시도로가 빈둥거리며 숲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그는 몇 방울의 물이
바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방울져 떨어지는 물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파놓았다는 것을!
그는 자기도 작은 물방울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몰입함으로써 그는 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한 그 이상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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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제르나크 혹은 티에르니(Tigernach Or Tierney)

축일 : 4월 4일

성 티에르니는 왕손이며,
킬다르의 성 콘데트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성녀 브리짓다는 그의 할머니이다.
소년 때에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으나, 후일 그는 자유를 얻었다.
그때부터 그는 스코틀랜드의
로스낫 수도원에서 모넨노의 제자가 되었으며,
로마 순례 뒤에는 아일랜드로 가서
클로거 교구의 주교로 축성된 것이다.
늙어서 그는 시력을 상실했지만,
그의 기도와 관상생활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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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라토(Plato)

축일 : 4월 4일

플라토이란 이름은 희랍 철학자 중
플라톤(Platon)에서 파생된 것이다.

성 플라토는 13세 때에 부친을 여의었으므로,
왕궁의 재무상이던 삼촌 밑에서 교육을 받고
그의 보좌관이 되었다. 그러나 22세 때에
그 중요한 직책을 사임하고 수도생활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서 이등분한 후, 자신의 두 여동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우어 주고,
자기는 올림푸스산의 심볼레온 수도원으로
가기 위하여 비티니아로 떠났다.
그는 여기서 철저한 보속생활을 실천하면서
교부들의 저서 사본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770년에 원장 테옥티스토가 서거할 때,
그가 후임자로 뽑혔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후 그는 심볼레온을 떠나
삭쿠디온으로 가서 20년 동안 원장으로 있다가
사임한 일도 있었다. 그 후 정치적인 이유로
니체포루스 황제는 그를 보스포루스섬으로
추방했는데, 이때 그는 늙고 병든 몸이었다.
811년, 미카엘 1세는 그를 석방하고
크게 존경하였다. 그는 평온하게 운명했는데,
성 테오도로가 그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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