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오늘의 성인♡

2016. 3. 23. 오전 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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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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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 오언(Nicholas Owen)

축일 3월 22일 

영국 옥스퍼드(Oxford)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 오언(Nicolaus Owen, 또는 니콜라오)는
처음에 목수 일을 하다가 그 지방의 예수회 건축 일을
담당하던 중에 예수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요한 제라르드(John Gerard)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가톨릭의 조직을
누설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부유한 신자가 대속금을
지불함으로써 석방되자, 제라르드 신부를 런던탑에서
극적으로 탈출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재차 런던탑에 투옥되어 3월 2일에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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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오그라시아(Deogratias)

축일 3월 22일 

카르타고가 439년에 반달족에 의하여 점령당했을 때,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은 궛불트데우스 주교를
추방함과 동시에 대부분의 성직자들을 물이 스며드는
폐선에 태워 떠나보냈는데, 이들이 다행스럽게도
나폴리(Napoli)에 도착하였다. 그때부터 14년 동안
카르타고에는 주요한 목자 없이 지냈는데,
발렌티니아누스의 요청으로 다른 주교 임명이
허용되었다. 그가 바로 데오그라티아
(또는 데오그라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제였다.

성 데오그라티아는 자신의 신앙과 가르침을 통하여
백성들의 신앙을 일깨우기 시작하였고, 이방인은
물론 아리우스파 사람들조차 그를 존경할 정도로
그의 선교활동은 크게 성공하였다. 주교로 임명된 후
2년 남짓 하는 해에 반달족인 젠세릭이 로마(Rome)를
습격하였고, 또 많은 포로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냈다.
이 불행한 포로들은 반달족과 무어인 사이에서,
또 가족관계가 모두 끊어진 암담한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다시 속량하기 위하여 데오그라티아는
성당에 있는 모든 귀금속을 팔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교는 가장 큰 성당을 두 개나
적들에게 넘겨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주교는 운명하고 말았다.
카르타고인들은 그의 장례를 성대히 치렀고,
그들의 구원자로서 그를 공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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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아(Lea)

축일 3월 22일 

로마의 부인인 성녀 레아는 과부가 된 후
성녀 마르첼라(Marcella)의 공동체에 들어가서
나중에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엄격한 생활과
극도의 고행으로 유명하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성녀 마르첼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녀의 덕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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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칼리니카(Callinica)

성녀 바실리사(Basilissa)

축일 3월 22일 

고대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부유한 부인들인 성녀 칼리니카(Callinica)와
성녀 바실리사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다가 그로 인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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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실리오(Basil)

축일 3월 22일 

4세기 중엽 아리우스파(Arianism)와
반 아리우스파가 그들의 이단 교리를 전파하고 있을 때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안키라(오늘날 터키의 앙카라)의 사제였다.
그는 거룩한 마르첼루스(Marcellus) 주교로부터
가톨릭의 정통 교리를 잘 배워 익혔던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르첼루스 주교가 황제로부터 축출당한 후부터는
그 역시 주민들로 하여금 정통 교리를 준수하도록
가르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360년 극단적인 아리우스파들이 바실리우스의
사제직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종교 집회를
금지시켜 버렸다. 그는 용감히 황제 앞으로 나가서
신앙을 옹호하고 싶었지만,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가 신앙을 부인하지 않자 형리들은 그의 손목,
발목을 못 쓰게 만든 뒤에 투옥하였다가 사형에 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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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성 트로피무스(Trophimus)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성 가티아누스(Gatianus).

성 프루덴티우스(Prudentius)

축일 3월 22일 

프랑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바오로(Paulus)는 프랑스
지방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하여 로마(Rome)에서
파견된 선교사이다. 그와 동행이던 성 사투르니노와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순교하였으나, 그와 아를(Arles)의
성 트로피무스(Trophimus) 그리고 리모주(Limoges)의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와 투르의 성 가티아누스
(Gatianus)는 온갖 위험을 극복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바오로의 이름이
나르본를 빛냈다고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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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벤베누토 스코티볼리(Benvenuto Scotivoli)

축일 3월 22일 

성 벤베누투스 스코티볼리(Benvenutus Scotivoli,
또는 벤베누토)는 이탈리아의 안코나(Ancona) 태생으로
법률을 공부하려고 볼로냐(Bologna)에서 공부하던 중에,
하느님이 사람의 영혼을 구하라고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사제가 되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로부터
안코나의 부제로 임명되었다가, 1264년에 오시모의
주교로 또 안코나의 마르체스의 행정관리로 선발되었다.
그의 축성식이 있기 전에 벤베누토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으며 향후 18년 동안 가난한 수도자로서
수덕생활에 전념하면서 교구를 돌보아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칭송받았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를
닮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자주 말하였다.
그가 임종할 때에는 사부 프란치스코처럼
맨바닥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시편이 낭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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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바프로디도(Epaphroditus)

축일 3월 22일 

사도 성 바오로(Paulus)의 동료(필립 2,25)이던
성 에파프로디투스(또는 에바프로디도)는
마케도니아(Macedonia) 지방 필립비(Philippi)의
첫 주교로 인정받고 있고, 또 리키아(Lycia)의
안드리아치와 이탈리아의 타라치나의 기록에도
그가 그곳의 첫 주교였다고 하여 크게 공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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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옥타비아노(Octavian)

축일 3월 22일 

성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또는 옥타비아노)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부제장(副祭長)으로
수 천의 그의 동료들과 함께 아리우스파(Arianism)
국왕 후네릭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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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스나르도(Isnard)

축일 3월 22일 

치암포는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 교외로
이스나르두스(Isnardus, 또는 이스나르도)의
고향이다. 청년 이스나르두스는 어느 날
성 도미니코(Dominicus)의 강론에 큰 감명을 받고
설교자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스승의 모범에 따라
훌륭한 설교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파비아(Pavia)에서 설교한
첫 번째 도미니코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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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 폰 플뤼에, (Nicholas VON Flue)

축일 : 3월 22일

스위스의 옵발덴 칸톤 사크셀른 교외의 비옥한 평야에
위치한 플뤼엘리 태생인 그는 도로테아 비쓸링과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고,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1439년의 쮜리히 전쟁에서 주민들과
합세하여 싸웠고, 1453년의 전쟁에서는 대장으로 싸웠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공직자가 되는 것을 꺼렸다.
1467년, 그의 나이 50세에 이른 해, 그는 아내와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고향 근교인 란프트 움막에서 9년 동안 지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성덕과 지혜로 명성이 드높았고,
주민들과 지도자들의 고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는 1481년의 스위스 연방을 확립할 때 프리부르그와
솔레르의 합병에도 큰 공을 세웠고, 부르군디의
챨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하였다.
그는 스위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수도자의 상을
정립하였고, "클로스 수도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움막이 있던 란프트에서 서거하였고,
194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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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산뚜치아(santuccia)

축일 : 3월 22일

성녀 산뚜치아 떼레보띠는 움브리아의 굽비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훌륭한 사람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죽었다.
자녀를 잃자 부모들은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여생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 얼마 후 산뚜치아는 굽비오의 베네딕또 수녀원을
지도하던 중, 비아 줄리아나에 있는 성전 기사회의
건물을 제공받았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수녀들을
"성모의 종"이라고 불렀으나, 대개는 산뚜치에
수녀들로 알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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