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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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Mark)
축일 : 3월 20일
마르코는
'비추이다'란 뜻이다.
아스꼴리의 산따 마리아 디 몬떼갈로 출신인
그는 뻬루지아와 볼라냐에서 수학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 얼마 후부터 이들 부부는 각각
수도 성소를 감지하고는 합의하여,
아내는 클라라회,
남편은
프란치스코회로 들어갔다.
그는 뛰어난 순회 설교가로 곧 명성을 얻었는데,
거의 40년 동안 놀라운 정열로 활동하였다.
한번은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마르코 형제여, 사랑을 설교하여라"는
말을 듣고는, 그의 설교 주제는 거의 항상
사랑이 되었다. 그는 늘 새벽 일찍 일어나
편태하였고, 한밤 중에는 고행을 행하므로써
자신을 단련시켰다. 또 까메리노에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사람들이 회개하면 즉시 극복된다는
예언을 하여 그대로 적중시킨 이후 그는 더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비첸짜에서 운명했는데,
임종하는 바로 그날, 그는 수난 복음을 읽어
달라고 한 뒤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제는 다 마쳤다"는 말을 남기고 영면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흔히 "사랑의 샛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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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 주교(580년 순교)
축일 : 3월 20일
마르티노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神)인
마르스에서 유래된 말로 '화성'이란
뜻이다.
뚜르의 성 그레고리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당대의 최고 학자였고, 크리스챤 시인
포르뚜나뚜스는 은혜를 수없이 입은 사람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원래 판노니아 사람인데,
팔레스티나로 순례한 후에는 스페인의
갈리시아까지 갔다. 그는 여기서 국왕
테오도미르를 개종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다른 아리아파 사람들과 배교자들을
로마 교회와 화해시켰던 것이다.
그의 선교 중심지는 두미움이었다. 그는
"왕가의 주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자신의 생활은 지극히 엄격하여 은수자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브라가
주교좌를 발전시켜 죽을 때까지 책임을 다하였다.
선교사의 직무 외에도 그는 저술로도 교회에
기여하였으니, "올바른 생활 양식들"이란 저서를
비롯하여, "거친 사람들의 교화에 관하여"라는
윤리 서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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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우리시오, 증거자
축일 : 3월 20일
마우리시오 크사키는 헝가리 왕족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했고, 커서는 수도생활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깨지고, 20세 때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부부는 서로는 극진히
사랑하고 또 이해할 줄 알았으므로, 불과
몇 년을 살고난 뒤에는 서로 헤어져서
수도원으로 가는데 합의하였다.
마우리시오는 설교회를 선택하여,
성 마가렛섬의 수도원으로 갔다.
이 부부의 수도원 입회는 큰 소문을
일으키게 되었으므로, 부다페스트의 행정관
라디슬라오가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으윽고,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으나, 엄격한 수도생활의
꿈은 일생동안 버리지 못하고, 성당지기가 되어
성체조배하는 일로 여생을 지냈다.
그는 라압에서 운명하였으나,
야바렝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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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프람(wulfram)
축일 : 3월 20일
다고베르트왕의 관리 아들로 태어난 성 불프람은
일찌기 사제가 될 꿈을 안고 궁중을 떠났다.
그후 그는 람베르또가 상스의 대주교좌를 떠날 때,
그가 후임자로 계승하였으나, 불과 2년 반만에
물러나야 할 입장에 있었다. 그는 이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프라시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는 일행과 더불어 해로를
통하여 프리스랜드에 상륙했는데, 국왕 라드보르의
아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후 그는 폰떼넬레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선종했는데, 그의 유해는 아베빌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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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킵포(archippus)
축일 : 3월 20일
전설적이긴 하지만 그는 골로사이(colossae)의
첫번째 주교였다. 그는 성 바울로로부터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정성을 다하여
완수하라"는 권고를 받았다(골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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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아미소의)
축일: 3월 20일
전설에
의하면 막시미아노 로마 황제때,
알렉산드라 성녀와동료 7명이 자신이 살던
아미소
도시의 집정관에게 나타나서그의 부정과 야만성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했다고 한다.
이 결과로 알렉산드라와 그 동료들은 매를 맞고
난도질을 당하여 불타오르는 용광로 안으로
집어 넣어져 순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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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오(ambrose)
축일 : 3월 20일
암브로시오는
희랍어로 '죽지 않는'이란 뜻이다.
시에나의 최고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또 손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유모가 도미니꼬회
수도원 성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그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릴적부터 병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감옥을 방문했다.
17세때, 그는 도미니칸이 되고자 했으나, 그를 미심쩍게
여긴 원장이 쾰른으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성 알베르또(대)를 스승으로 또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친구로 만나게 된 것이다. 위대한 스승과 뛰어난 친구의
도움으로 높은 학덕을 얻었고, 하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둔생활을 갈망하여 장상의
허락을 얻었지만, 설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 다니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청중들은 설교하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성좌의 요청에 따라 성좌와 시에나의
정치적 알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레고리오 교황이 서거함에 따라 자기 수도원으로
은신해버혔던 것이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새벽 기도 후에는 2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나,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였다. 44년간의 수도생활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에는 꼭 빵과 물로만 식사 하였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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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리스트(evangelist)
축일 : 3월 20일
이
두 사람은 베로나의 학교 시절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이래, 무덤에
갈때까지 함께 생활한 보기 드문
성인들이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입회하였는데, 이 수도회의
이름른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은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환시에 따라 베로나
교외에 있던 성 아우구스띠노회의 은수자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원장이
어느날, 당신들은 왜 그토록 자주 문 밖에서 하늘만
응시하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를
팔에 안고 계시는 성모님과 성녀 안나를 그곳에서
뵈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이분들이 바로 그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은 초자연적 은혜는 이 두 친구들에게 원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로 처신토록
하였으며, 가장 힘든 노동까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으므로 은둔소를 찾아드는
환자들을 낫게 하여 이곳은 날로 유명해졌다.
에반젤리스트는 천사의 발현을 받고 머지 않아
임종하맇는 말씀을 듣고는 무릎을 꿇으며 감사하자,
그 천사는 평화로이 물러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레그리노도 하느님께 간청하여 친구와 같이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에반젤리스트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너도 곧 나를 따르리라고 말한 뒤에
페레그리노가 운명하여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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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킵포(archippus)
축일 : 3월 20일
전설적이긴 하지만 그는 골로사이(colossae)의
첫번째 주교였다. 그는 성 바울로로부터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정성을 다하여
완수하라"는 권고를 받았다(골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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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렉산드라(아미소의)
축일: 3월 20일
전설에
의하면 막시미아노 로마 황제때,
알렉산드라 성녀와동료 7명이 자신이 살던
아미소 도시의 집정관에게 나타나서그의 부정과
야만성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했다고
한다. 이 결과로 알렉산드라와 그 동료들은 매를
맞고 난도질을 당하여 불타오르는 용광로 안으로
집어 넣어져 순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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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오(ambrose)
축일 : 3월 20일
암브로시오는
희랍어로 '죽지 않는'이란 뜻이다.
시에나의 최고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또 손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유모가
도미니꼬회 수도원 성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그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릴적부터 병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감옥을
방문했다. 17세때, 그는 도미니칸이 되고자 했으나,
그를 미심쩍게 여긴 원장이 쾰른으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성 알베르또(대)를 스승으로 또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친구로 만나게 된 것이다.
위대한 스승과 뛰어난 친구의 도움으로 높은
학덕을 얻었고, 하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둔생활을 갈망하여 장상의 허락을
얻었지만, 설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
다니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청중들은
설교하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성좌의 요청에 따라 성좌와 시에나의 정치적
알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레고리오
교황이 서거함에 따라 자기 수도원으로 은신해버혔던
것이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새벽 기도 후에는 2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나,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였다. 44년간의 수도생활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에는 꼭 빵과 물로만 식사 하였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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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리스트(evangelist)
축일 : 3월 20일
이
두 사람은 베로나의 학교 시절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이래, 무덤에
갈때까지 함께 생활한
보기 드문 성인들이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입회하였는데,
이 수도회의 이름른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은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환시에
따라 베로나 교외에 있던 성 아우구스띠노회의
은수자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원장이 어느날, 당신들은 왜
그토록 자주 문 밖에서 하늘만 응시하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를
팔에 안고 계시는 성모님과 성녀 안나를
그곳에서 뵈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이분들이 바로 그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은
초자연적 은혜는 이 두 친구들에게 원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로 처신토록
하였으며, 가장 힘든 노동까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으므로
은둔소를 찾아드는 환자들을 낫게 하여 이곳은
날로 유명해졌다. 에반젤리스트는 천사의 발현을
받고 머지 않아 임종하맇는 말씀을 듣고는 무릎을
꿇으며 감사하자, 그 천사는 평화로이 물러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레그리노도 하느님께 간청하여
친구와 같이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에반젤리스트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너도
곧 나를 따르리라고 말한 뒤에 페레그리노가
운명하여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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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John)
축일 :
3월 20일
요한은 '야훼는 은혜로우시다'란
뜻이다.
프란치스코회의 제 7대 총장인 요한 부랄리는
파르마 출신으로, 25세 때에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는 즉시 파리로 가서 공부를 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볼로냐, 나폴리 그리고
로마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의 설교는
뛰어났으므로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다.
1247년, 그는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강인하고 배짱이 센 사람이라 인내심도 많았기
때문에 수도회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갔다. 그는 자주 부엌 일하는 수사들을
거들어 준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고 화해의 정이 깊어서,
쓸데없는 말은 삼갔다.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국왕 헨리 3세가 문밖으로 나와 루이
9세가 그의 기도와 축복을 청할 정도로
공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교황으로부터
임명 받은 동방 황제의 교황 대사로서
봉사하기도 했다. 1257년에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성 보나벤투라를 후임자로 뽑았다.
그는 그레치오의 은둔소로 은퇴하여 30여 년
동안 잊혀진 사람으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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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트베르트(Cuthbert)
축일 : 3월 20일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일랜드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코트인이라 하지만,
저명한 역사가인
성 베다는 브리톤 출신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린 아이였을 때 고아가 되었고, 얼마동안
목동 노릇을 하였으며, 메르시아족과 싸웠던
경험도 있다. 그는 멜로즈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성 에아따를 수행하여 리폰 수도원으로
갔으나, 알크프리드 국왕이 이 수도원을 성
윌프리드에게 넘겨주자, 다음 해에 멜로즈로
돌아와서,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주로
선교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성 콜만이 로마
전례 거행을 결정한 휘트비 회의 결정을
수락하기를 거부하고, 린디스파른의 대부분의
수도자를 이끌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버렸을 때,
성 에아따가 그의 후임 주교로 임명되고,
쿠트베르트는 린디스파른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교 활동을 재개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일은
그가 은수자로 생활할 허가를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헥섬의 주교로 선임되고 말았다. 그는
린디스파른의 주교가 된 것이다. 그는 2년
동안 자기 교구를 지도하였는데, 그 당시
교구 내에 유행하던 페스트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성덕은 너무나
뛰어나서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더구나
그의 예언 늘력은 특히 돋보였다.
린디스파른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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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그리노(peregrine)
축일 : 3월 20일
이
두 사람은 베로나의 학교 시절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이래, 무덤에
갈때까지 함께
생활한 보기 드문 성인들이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입회하였는데, 이 수도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은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그떄 받은
환시에 따라 베로나 교외에 있던
성 아우구스띠노회의 은수자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원장이 어느날, 당신들은 왜 그토록
자주 문 밖에서 하늘만 응시하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를
팔에 안고 계시는 성모님과 성녀 안나를
그곳에서 뵈옵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이분들이 바로 그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분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받은 초자연적 은혜는 이 두
친구들에게 원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로 처신토록 하였으며,
가장 힘든 노동까지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으므로 은둔소를 찾아드는 환자들을
낫게 하여 이곳은 날로 유명해졌다.
에반젤리스트는 천사의 발현을 받고 머지
않아 임종하리라는 말씀을 듣고는 무릎을
꿇으며 감사하자, 그 천사는 평화로이
물러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레그리노도
하느님께 간청하여 친구와 같이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에반젤리스트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너도 곧 나를 따르리라고 말한
뒤에 페레그리노가 운명하여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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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띠나(Photina)
축일 : 3월 20일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 시카르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포띠나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그녀도 예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카르타고에서 순교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를 개종시켰고,
수백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네로의
박해 이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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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토(Herbert)
축일 : 3월 20일
그는
성 쿠트베르토의 제자겸 절친한
친구였으며, 매년 린디스파른에 있던
그의 스승을 방문하여 그의 사도적
정열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던 중에
스승이 운명하기 1년 전부터는 아예
스승과 함께 지내며, 그분 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분은 기도와 고행으로
깊이 일치하였고, 두 성인이 거의 함께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성 헤르베르토는
스승에 대한 사랑과 친구의 우정으로
인하여 높은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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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체타스 주교 .비티니아 .735년경
*성녀 데르푸타 순교 .300년경
*성녀 마트로나 순교 .소아시아 .
*성녀 에우페미아 순교 .소아시아 .300년경
*성 에반젤리스트 은수자 .베로나 .1250년경
*성 울프란노 주교 .프랑스
*성녀 율리아나 순교 .소아시아 .300년경
*성녀 칼디아 순교 .300년경
*성 테오도시아 순교 .소아시아 .300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