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용은 좋은데 역시 글씨가 너무 작아서
불편을 덜기위해서 다시 키워서올립니다.-靜動呂>
"교만과 허영"
아기예수의 성녀데레사의 가르침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
데레사 성녀는 세상이 지닌 갖가지 유혹, 그 중에서도 교만과 허영, 이웃의 눈에 돋보이려는 욕망때문에 이 세상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교만과 허영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허영은 외적인 화려함이 있으나 교만은 내적인 화려함을 지향합니다. 영적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교만이 허영보다 훨씬 집요하고 교묘합니다. 따라서 허영보다 교만이 훨씬 다루기 어렵고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교만은 남의 결함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남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이에서만족을 찾는 것입다. 성직자들도 이러한 유혹에서 전적으로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교만과 허영이 이웃사랑에 크게 반대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기쁨과 너그러운 눈길을 찾지 않고, 그 대신 사람들의 눈길과 찬사에 신경을 씁나다. 이런 영혼은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결국 교만한 자는 즐겨 이웃의 결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부각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완덕에서 우리가 가장 깊이 느끼는 점은 성모 마리아의 순명과 더할 수 없는 겸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의 여성중에서 가장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신,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된 여인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그리고 피조물의 신분으로써 하늘에 부름을 받아 들어올려지셨음은 마리아에 대한 우리 교회의 찬사와 존경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잉태시기를 제외하면, 예수님이 열두살 되던 무렵 예수님을 잃으셨다가 성전에서 찾으셨던 일,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바로 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하시던 일을 제외하면 거의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성모님이 이 모든일을 가슴에 간직하시고 여느 주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신데 있습니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일인가요? 성모님은 단 한번도 자신의 아드님 예수가 하느님과 함께 계신 ‘임마누엘’임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로지 여느 주부처럼 남편 요셉 성인을 도우고 아들 예수를 키우시며 집안에서 빨래하고 밥하시면서 평범한 주부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poor in spirit) 은 행복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오로지 영적으로 가난하게 해주실 것을 늘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모래알 영성을 가졌으며 오로지 사람들에게 밟히면서도 잊혀져가기만을 주님께 청하였습니다. 성인은 잊혀지는 영성, 가난한 영성을 갖게 되기를 항시 기도하고 청원하였던 것입니다.
숨어서 위대한 성녀가 되려는 욕망
데레사 성녀는 항상 두가지를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하나는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연약하고 작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의 것은 이웃 앞에 선 인간의 태도이고 둘째의 것은 하느님 앞에선 인간의 태도입니다.
이웃의 눈에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주위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을 더욱 하느님의 현존안에 살게하고 그분 앞에서 자기가 작다는 것을 의식하게끔 이끕니다. 이웃으로부터 불완전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기뻐한다는 것은 영적가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면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참된 영광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며, 이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눈부신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숨어살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듯이’ 덕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데레사 성인이 이를 깨닫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 살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참된 영광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이를 깨달았음은 데레사 성인이 받은 은총 중 가장 큰 은총이었으며 이 은총은 그녀에게 참된 겸손의 덕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데레사 성인은 자신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성덕 자체이신 하느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가진 겸손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눈에 숨어 있고 싶다는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도움없이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자기 인식입니다.
데레사 성인은 언제나 영원에 대한 큰 갈망, 영생에 비해 이 세상의 기쁨이나 칭찬 따위는 참으로 하잘 것 없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이미 아홉살 때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위대한 성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성인이 가르멜 수도원을 동경한 이유는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위대한 성녀가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작은 희생의 꽃송이
하느님께서만 알아주시는작은덕행이얼마나가치있는일인지를사람들에게일깨우고“이세상에서우리가해야할일은단한가지, 즉작은희생의꽃송이를예수님께 바치는것”외에는아무것도없다는것을온세상에 알릴수있도록성인을가르멜수도원에숨어살도록해주신분은바로하느님이셨습니다.
작은 희생의 꽃송이가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릴 것이라는 깨우침으로 인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소화(작은 꽃)라는 칭호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드러나는 일을 하기보다는 하느님께 바치는 작은 희생의 꽃송이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가를 소화 데레사 성인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가톨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 33인
데레사 성인은 24년9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그녀의 회고록 <한 영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급속도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짧고 겸손한 이 글이 어떻게 이처럼 영적인 힘을 내뿜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감동시켰습니다. 그녀의 무덤에 참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그녀가 사망한지 2년이 되었을 때는 무덤에 보초를 세워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망한지 28년 후 1925년 그녀는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사망 100주년인 1997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성하께서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포함된 33명의 최고 엘리트 성인에 데레사 성인을 올렸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 교황성하께서는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오로지 사람으로부터 잊혀지기만을 원했던 가난한 영혼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느님께서만 알아주시는 작은 희생의 꽃송이만을 바치기를 원했던 이 겸손한 믿음에 대하여 이 얼마나 위대한 보상입니까? 우리가 비록 광야에 핀 작은 들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작은 희생을 통하여 얼마든지 위대한 성덕을 이룰 수 있으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음을 작은 꽃 데레사 성녀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