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종교의 시대
박문수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며
저서로 (한국의 종교문화와 뉴에이지 운동) 등이 있다.
몇년 전에 지인들과 함께 21세기에 한국 종교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다소 이견이 있었지만 큰 흐름은 불교가 득세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불교가 소속을 문제 삼지 않는 점, 제도적인 규제가 약한 점, 그리고 합리주의적 세태에 어울리는 교리라는 점 등이 21세기 한국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막상 21세기에 들어서고 보니 맞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적지 않다. 우선 종교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소속을 따지지 않는 종교적 관심이 급속하게 성장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영성이 종교의 경계를 넘어 기성 종교인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종교적 요소들이 혼합되면서 세속적인 상품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예측을 다소 벗어나기는 했지만 소속 없는 종교성이 확대되리라는 것만은 적중한 셈이다.
지난 한 해 교회언론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던 ‘신흥영성운동’에서 대표적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이제는 기성종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운동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인 바 교회도 더 이상 방관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신흥영성운동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탈제도적 종교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로 뉴에이지를 비롯해 정통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벗어난 유사정신운동을 포괄하고 있다-편집자 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신흥영성운동의 출현 배경에 대한 분석과 함께 가톨릭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와 교회에 퍼져 있는 신흥영성운동 형태들을 관찰 분석하게 되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요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요가는 인도철학을 공부하거나 명상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연히 관심자들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소비상품이 되었다. 스트레칭 위주로 되어 있는 요가 아사나(asana)가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알려져서다. 요가에는 체조인 아사나만 있는 게 아니다. 식이요법, 호흡법, 명상법도 있다. 그런데 유독 아사나만 관심을 끄는 것은 다이어트라는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다. 이처럼 요가를 체조로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체조에만 머물게 되지 않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알다시피 요가는 대표적인 자력해탈(自力解脫) 방식이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온 방식들이 그러하듯 요가도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 체조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되면 반드시 가톨릭 신앙과 충돌하게 되어 있다.
대체의학
요가와 같이 수요층이 급속하게 늘어난 건강상품이다. 한방, 식이요법, 수맥, 역학, 풍수, 향기(Aroma), 침술, 마사지, 지압, 음악 무용 미술치료, 최면, 전생(前生), 태이핑(Taping) 등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방식들이 대부분 들어 있다. 정신 치료 목적의 일부를 제외하면 다 건강법이다. 이 중에는 검증된 방법도 많다. 따라서 이 방법들을 뉴에이지와 결부시키는 게 의아스럽기 마련이다. 신자들의 생계와 직접 관련된 것들도 있으니 더더욱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대체의학도 요가와 마찬가지로 건강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무방하다. 다만 검증된 방법 외에는 가톨릭 신앙과 충돌하는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 음양오행이론과 사상(四相)이론, 요가, 범신론적 생태이론, 중국의 주역, 도가(道家)철학, 불교의 전생 사상에서 부분적 혹은 전적으로 차용한 요소들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선(禪)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선(禪)이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물론 그의 말대로 선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 가운데서도 선의 좌법(坐法), 호흡법, 명상법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종교인이 아닌 이들도 선을 정신수양의 차원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문화에서 종교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선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배어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대중적으로 향유되는 선은 정신집중이나 정신건강을 목적으로 한다. 일부 지성인들과 종교인들에게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는 수단에 머문다. 그러나 이 역시 요가와 같은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충돌하는 면을 갖고 있다. 선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인도와의 관련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좌법, 명상기법 등은 요가에서 비롯되었다. 자력해탈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선은 요가와 같이 그리스도교와 충돌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기 혹은 기수련 운동
요가가 각광을 받기까지는 기수련이 매우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요가 정도만큼 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 혹은 기수련 운동도 비교적 넓은 수요층을 가지고 있다. 기와 기수련은 80년대 중반 이후 민족문화의 발굴과 선양 분위기에 맞물려 저변이 확대되었다. <가톨릭신문> 박영호 기자에 따르면 국내의 기수련 인구는 대략 200만에서 250만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 단월드가 국내외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집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기와 기수련 운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인간의 잠재능력을 계발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요가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는 면에서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정신운동인가 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단체는 기업형 방식을 표방하고 있고, 자신들의 수행방식을 상품화하고 있다. 영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것은 분명 그리스도교 정신과 거리가 먼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수련운동이 단순히 정신수양, 건강법에 머물지 않고 자력구원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동양 종교와 수행법들이 갖는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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