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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에서 200m거리에 있는 다산유적지에는 사당과 기념관, 생가터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언덕 위에는 다산의 묘소가 있다. 이 묘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한강을 넘어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 계곡이 펼쳐져 있다. 정약현,약전,약종,약용 4형제 중 셋째 인 약종은 천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로서, 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남아 있다. 또한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 이들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라는 것을 보면 정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중 정다산은 그의 형 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천수를 다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본래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10여년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신유박해(1801년) 때 한 천주교도가 정약용의 윗형인 약종에게 보낸 편지에 '자네의 아우가 알지 못하게' 라는 문구로 인해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하지만 공서파에서 정약용을 억지로라도 죽이려 하자,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 여권의 주옥 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쓰여진 것이다.그가 강진에서 보낸 유배 생활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그의 저서와 사상을 민족의 유산으로 가지게 되었다.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곳 마재로 돌아온 그는 보속하는 뜻에서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뒷편 묘소에서 내려다 본 여유당

선생의 영정 그림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라고 한다.하지만 지금은 관람객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








정조16년 다산이 왕명에 따라 독일인 선교사 슈레크가 저술한 기기도설에 실린 그림을 보고 고안한 운반도구로 밧줄과
도르레를 이용하여 물건을 들어 올리는데 사용 하였다.세상적으로볼때 가장 잘나가던 시절.
수원 화성 축조에 사용하였으며 다산선생의 과학정신과 앞선 시대정신을 엿볼수 있다.




유물관에 걸린 한 점의 화폭 앞에 눈길이 멎는다.
1990년대 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다가 목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던 그 대목...
다산의 매조도 복사본 앞에 섰다.

강진의 유배생활 수년째 되는 해에 부인 홍씨가 빛바랜 다홍치마 6폭을 보내왔다.
세월 지나 빛은 바랬지만 그 다홍치마는 부인이 시집올 때 입고 온 치마였다.
부인의 치마를 잘라 서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두었다가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나무에 새 두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에 시를 곁들여 족자로 만들어 보냈다.
翩翩飛鳥 息我庭梅
有烈其芳 惠然其來
爰止爰棲 樂爾家室
華之旣榮 有賁其實
포롱포롱 새가 날아와 나의 정원 매화나무에 앉았다
매화꽃 향내 짙어 그 향기 그리워 찾아왔구나.
이제 여기에 머물러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아라.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열리리라.
은은한 매화향기에 취해 쓸쓸한 유배생활의 위안을 삼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한 마리 새가 정원의 매화나무에 앉는 것을 보고 다산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부인이 혹 새가되어 날아온 것은 아닐까?
바다 건너 흑산도에 계시는 약전 형님이 보고싶은 마음을 새에게 대신 보내지는 않았을까?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한 유배객을 위로하려 먼저 가신 아버님이 하늘에서 보낸 귀한 친구인가?
지필묵을 꺼낸 다산은 몇 해전 부인이 인편에 보내온 시집올적 입었던 색바랜 다홍치마를 꺼내 그 위에 애절한 마음을 그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적어 외동딸에게 선물한다. 곤궁한 유배생활 중에 딸을 시집보내며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실로 이것 외에 무엇이 있었으랴.
다산에 대한 홍씨 부인의 간절한 그리움과
귀양살이하는 아버지가 자식들에 대해 본분을 다하려는 애타는 부정은
슬프고 아름다운 연가가 되어 팔당호수에 가득히 넘친다.

고향 마재 마을을 지키며 남편을 손꼽아 기다리던 홍씨에게 지아비의 해배소식은 맨살을 꼬집어보아야만 믿길 정도로 거
짓말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립문에 들어서는 남편의 모습에 부인은 고개 돌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떠날 때 나이 사십의 건장한 청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깊이 패인 주름살에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만은 덜 늙었기를 바랐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못다 한 저술작업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다산은 60년 전, 15살의 나이로 불그레한 볼에 꽃가마 타고 온 새색시를 맞던 그 날 숨을 거둔다. 죽기 전 다산은 얼마 남지 않은 회혼일에 맞춰 미리 시(回 禮)를 하나 짓는다.
육십 평생 바람개비 세월이 눈앞을 스쳐 지나는데 무르익은 복숭아 봄빛이 마치 신혼 때 같아라.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60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한 이팔청춘 곱던 얼굴의 여인을 주름살만 가득한 할머니로 만든 무심한 세월에 대한 투정이 가볍게 묻어 있다.

부인 홍씨와의 합장묘. 기나긴 유배기간 생이별로 인하여, 수백년이지난 후세인들까지도 가슴아리게하는 이분들은,
이제 영원히 하나되어, 이른아침이면 피어오르는 팔당호의 물안개를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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