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회개입니다.
‘회개하여라!’
예비자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회개라고 그럽니다.
그토록 많이 들었던 단어이지만 그 회개의 의미를 구구절절이 깨닫고
우리가 몇 번이나 참다운 회개를 하였던가!
회개에도 수많은 단추가 있습니다.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상숭배에 빠져 살았던 것을 회개하셔야 됩니다.
옛날 우상은 금송아지였지만 현대판 우상은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여러분들, 솔직히 하느님 첫째 자리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어쩌다 급하면 가끔 꺼내보는 해결사!
필요하면 미사 때, 강론 때 잠깐 의식하다 말고 성당 나가면 다 잃어버리는 악세사리, 고급취미.....
여러분 머릿속에 하느님 없습니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 죽을 날이 가까워 오신 분들
죽음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던 사람들은 첫째 자리로 갈 겁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끼리 부딪혀서 차가 깡통처럼 찌그러졌습니다.
세상에 ~~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다 죽었을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
그 안에서 머리카락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납니다. 그 인간이 바로 30년 냉담하던 인간이야.
그 인간, 병원에서 태어나자 마자 성당으로 성사보러 갔겠지요?
눈물, 콧물 흘리면서 “주님, 이 죗덩어리 인간 어디에다 쓰시려고 살려주셨습니까?
앞으로 내 인생 내 것이 아님을 절감하고 정말 겸손하게 하느님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살겠습니다.”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하느님이 첫째자리에 계십니다.
젊은 엄마들에게 머리 굴리지 말고 바로 얘기하라고 그러면 첫 번째 자리가
남편이라고 그럴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남편은 이미 쓴물단물 다 빠졌습니다.
대개가 젊은 엄마들의 첫째자리는 자식입니다.
맞지요?
남편이 둘째나 셋째 자리에만 있어도 그 남편은 대단히 럭키한 남편입니다.
자식, 자기 건강, 취미생활, 남편.....
이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 주님은 당서열 10위에도 들까말까 합니다.
전국구 공천도 못 받습니다.
문제는 자식, 내 건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행복....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신데 그 주시는 분은 저 밑바닥에다가 처박아놓고
달라고 하니 이게 응답이 오겠는가?
여러분들, 주님의 기도할 때 나를 위한 청원의 기도가 앞에 부분에 나옵니까? 뒷 부분에 나옵니까?
뒷부분에 나오지요?
앞부분에는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존경이 나옵니다.
뒤에 가서야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고, 과거에 대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것을 지켜달라는....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계셔서 좌정하실 때
나머지는 질서가 잡힌다는 그 뜻입니다.
점집에 찾아다니는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건강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면...
지 건강을 위해서는 오만 걸 다 먹고 오만 걸 다하면서도 늘 머릿속에 내 건강만 생각하는.....
하느님이 건강 때문에 밀려나 계십니다.
자식이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보다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그것은 다 우상입니다.
이것 회개하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회개할 거리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만 끌어안고 살았지 한 번도
내가 다른 이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 눈물로 절절히 회개 청해 본적이 없습니다.
다른 이가 나에게 찔러준 작은 가시만 보고도 우리는 복수할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살면서 내 아내의 가슴에다가 대못을 박고 내 주변사람에게 등에다 칼을 찔러 집어넣는데도
지금도 그 사람은 그 대못을 못 빼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도
지손에 찍힌 작은 상처만 바라보면서 한 번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어찌 회개거리가 이것뿐이겠습니까?
신자들은고백소에 들어가면서 많은 경우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하다가 맙니다.
후회와 회개는 말장난이 아니라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후회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자기중심입니다.
지 자신이 죄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 이겁니다.
‘이 등신아 왜 너 똑같은 죄에 떨어져?’
늘 자기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인간이 유다스였습니다.
예수님 팔아 먹을때도 자기중심적이었고 예수님 돌아가신 뒤에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나같은 놈은 구원 못 받아!’
구원받는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히 해석할 일이 아니지요.
성모님이 계신 다락방으로 찾아갔다면
다른 제자들이 유다스를 때려죽이려 하더라도 누가 막아섰겠습니까?
성모님이 끌어안았을 것입니다.
유다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나는 자살밖에 없어.’
이게 바로 후회입니다.
후회는 늘 자기중심적입니다.
죄를 짓고 난 후에도 죄를 짓기 전까지도, 죄에 떨어지고 난 뒤에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내가 그 죄에 떨어졌을 때 우리 주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
'내가 남의 험담을 하고 돌아다닐 때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내가 하느님을 멀리 할 때 성모님께서 나를 보시면서 얼마나 눈물로써 나를 위해 전구하셨을까!’
베드로사도는 세 번 하느님을 배반했지만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의 그 동정어린 눈을 쳐다본 겁니다.
‘아, 저 분이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내가 세 번이나 당신 모른다고 할 때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주셨더라면 내가 덜 가책을 받았을텐데....’
예수님의 그 연민어린 눈이 생각났지요.
회개는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후회는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40일 동안 여러분들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내가 우상숭배에 빠져 살지 않았던가!’
‘다른 이에게 상처준 것에 대해서 얼마나 회개했던가!’
너무 많이 회개를 확산시키지 말고 두 가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판공성사에 임하십시오.
사순절은 어느 본당이던지 분명히 성사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