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솔뫼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피난 교우였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와 모친 고 우르술라 사이의 장남이었습니다.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숱한 고생 뒤에 마침내 사제품을 받습니다.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가 집전한 서품식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8월 31일에 조선 입국을 시도합니다. ‘라파엘 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으로 서해 횡단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1845년 10월 12일 충청도 나바위 인근 바닷가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선교 활동에 힘쓰며 선교사들의 입국을 위해 노력합니다.
이듬해 6월, 서해를 통한 뱃길을 알아보려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관헌에 체포됩니다. 수차례 문초와 회유를 받았지만 끝내 변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군문효수형을 받고 한강 백사장에서 순교합니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의 일이었고 당시 나이 26세였습니다.
그분이 한국의 첫 사제였기에 성인으로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첫 사제답게 사셨기에 성인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그토록 어렵게 사제가 되셨지만 기꺼이 교회의 거름으로 자신을 바쳤기에 우리는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숱한 고생 뒤에 마침내 사제품을 받습니다.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가 집전한 서품식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8월 31일에 조선 입국을 시도합니다. ‘라파엘 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으로 서해 횡단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1845년 10월 12일 충청도 나바위 인근 바닷가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선교 활동에 힘쓰며 선교사들의 입국을 위해 노력합니다.
이듬해 6월, 서해를 통한 뱃길을 알아보려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관헌에 체포됩니다. 수차례 문초와 회유를 받았지만 끝내 변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군문효수형을 받고 한강 백사장에서 순교합니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의 일이었고 당시 나이 26세였습니다.
그분이 한국의 첫 사제였기에 성인으로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첫 사제답게 사셨기에 성인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그토록 어렵게 사제가 되셨지만 기꺼이 교회의 거름으로 자신을 바쳤기에 우리는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