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 선명 스테파노 수사,ssp
수사로서의 행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바오로 인터넷서원을 사랑 해주시는 여러분 새로 시작되는 해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많이 받으세요.
이번 글은 지난 회보에 실었던 “수사로서의 행복”
을 새해 인사와 더불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치 지나가지 않을 듯이 축축하고 뜨거웠던 지난여름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뭇잎들이 붉거나 노랗게 물들며 마치 인생의 황혼처럼 추운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깊은 겨울, 곧 봄이 오겠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인생은 순환하지
않고 한 번의 아름다움,
혹은 황홀함과 수없는 번뇌와 고통을 남기고 지는 것이 사람의 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섭리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곧 돌이킬 수없는 인생의 가을이나 겨울을 맞이한다는 것이겠지요.
찬바람을 견디는 헐벗은 겨울나무처럼 하나씩 둘씩 마음의 번뇌며 욕심들을 내려놓는
시기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의 미숙함과 방황에서 돌아와 하느님과 진심으로 대면하며
성찰에 들 수 있는 풍요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수사로서 살아간다는 게 행복하다는 것을 세월의 신산함을 모두 넘긴 요즘에서야
새록새록 깨닫습니다.
수사라는 신분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분과 직업의 외피를 두르고 살아가지만
그러한 껍데기가 우리들을 잠시 우쭐하게 했다면 그것은 곧 사라져버릴 신기루와 같은
공허한 즐거움이고 교만에 지나지 않겠지요.
우선 수사이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며 이웃들로부터 섬김을 당한다는 착각,
교만에 노출되지 않아 수도자 본연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모사, 그 분의 행적을 따르는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수도원 형제들 모두, 아니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두가 잊지 말고 새겨야할 만고불변의
원칙이지요. 예수께서는 수난이 시작되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써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환기시킵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입니다.
우리는 사소하고 단순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이와 같은 진리를 너무도 쉽게 배반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곤 합니다.
유다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배신자는 아닙니다.
제가, 그리고 우리가 교만에 드는 순간부터 이미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배덕에
빠져드는 순간이기도 할 겁니다.
미숙함과 어리석음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들과 좌절과 분노로 어찌할 줄 모르던 한 젊은이가
세월의 저편에 놓여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주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본 후에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되는 ‘
의심 많은 도마’처럼 저의 젊은 시절은 얼마나 많은 미혹 속에 놓여 있었는지요.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섬김’은 눈멀고 어두운 길목에서 저를 인도해주던 환한
불빛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아이처럼 배덕의 길을 따라 걷다가도 그 환하고도 황홀한
빛을 따라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미를 아주 훌륭하게 형상화 시킨 우화들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이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그리스도를 좇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랑을 모두가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과 섬김의 방식은 달라도 그분들이 우리가 어두운 밤길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환한
불빛이며 남들 위에 서서 섬김 받고자 하는 우리들의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환기시켜주는
매운 번갯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모르는 자야 말로 가장 타락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신의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자신의 마음의 어디가 아픈 것인지, 자신을 살필 겨를이 없는 이는 더 이상
나아질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종국엔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수없는 실수와 성찰과 반성의 시간들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세리 마태오나 자캐오 같은 당대의 죄인들을 받아들인 이유는 인간이 과정중의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회개’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과 행동의 획기적인 변화이지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결코 아닌 이유입니다.
우리가 교만에 빠져 있을 때가 바로 ‘그리스도의 빛’으로부터 가장 멀어져 있을 때입니다.
이런 상황을 살피지 못할 때가 그리스도인이, 수도자가 가장 타락한 순간입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햇빛은 다시 온 세상에 가득해질 것이며 꽃은 만발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온 세상에 알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늙을 것이고 봄날로부터 한층 멀어질 것입니다.
그래도 행복한 이유는 제가 여전히 주님의 따듯한 품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온
마음과 몸으로 이해할 여유와 혜안을 얻어가기 때문입니다.

성바오로 인터넷서원지기 할배 수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