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1.31)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07. 1. 31. 오전 8:34:38

글자
2007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히브리서 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복음 마르코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제 고등학교 친구 중에 의사가 한 명 있습니다. 사실 이 친구가 의사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 않았거든요. 또한 이 친구가 잘하던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기 때문에, 언어 쪽으로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외국어 대학교를 나왔고,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다녀온 뒤, 공부를 더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의대 공부를…….

저와 다른 친구들은 말렸지요.

“네 나이가 몇 인데 이제야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느냐? 네 실력으로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이제는 네가 모셔야지, 언제까지 부모님 도움을 받을 꺼야?”

우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년 만에 공부를 해서 다시 의대에 들어갔고, 드디어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원로한 부모를 힘들게 하는 큰 불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의사가 된 뒤에 보니, 이 친구의 힘든 선택이 오히려 올바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의 만류를 듣고는 자신의 꿈을 접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이 친구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꿈을 함부로 접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내가 잘 아는 양,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함으로 인해 그 사람 미래에 영향을 끼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자기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 가정환경, 가족상황 등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자기들인데, 따라서 이제까지 봐온 예수님의 모습을 정리하여 볼 때 저런 놀라운 말씀과 기적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그들은 현재의 모습인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인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예수님의 특별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곳에서 예수님은 아무런 기적을 행할 수가 없었지요.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현재를 판단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은혜 받을 사람의 축복을 빼앗을 수도 있으며, 사람의 앞길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하시려는 주님을 거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가 안다고 함부로 판단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더 큰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평가절하하지 맙시다.




희망을 위하여(배한봉)


아침이라서 해 뜨는 것이 아니라
해 뜨니까 아침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해를 가진 사람
삶이 빛나서 희망도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주저앉아 흙탕에 젖고 황혼에 젖고
혹한에 떨며 벼랑 아래로
한없이 무너지던 만신창이 영혼
그 시간 너머에서 해는 뜬다

오늘 아침은 오늘 '나'의 아침
구름도 바람도 오늘 '나'의 노래
희망이 있으니까 삶은 빛난다

눈보라 끝에 꽃봉오리 터트린
저 눈부신 홍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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