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1.23) - 연중 제3주일 화요일

2007. 1. 23. 오전 8:44:04

글자
2007년 1월 23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히브리서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르코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아이스크림 집에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가 손님으로 왔습니다. 이 아이스크림 집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요. 아르바이트생은 조폭처럼 생긴 이 아저씨가 너무나 무서웠지만 그래도 손님이니까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맞이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이스크림 주세요.”

무섭지만 미소를 계속 간직하면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가 “더 퍼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조금 더 퍼주면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는 인상을 약간 쓰면서 말합니다.

“더 퍼 달라고요!”

아르바이트생은 이번에도 무서웠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조금 더 퍼준 뒤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는 가뜩이나 무서운 얼굴을 더욱 더 무섭게 하면서 말합니다.

“더 퍼 달라고!!”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아르바이트생은 이번에는 왕창 퍼주면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는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게 아니고, 뚜껑 덮어 달라고!!!”

조폭처럼 생긴 아저씨는 “아이스크림의 뚜껑을 덮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아르바이트생은 아이스크림을 더 퍼 달라는 것으로 들었던 것이지요. 똑같은 말인데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뜻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마 오늘 복음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병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시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예수님께 그 소식을 알리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주 매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분명히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특히 어머니에게 이렇게 서운한 말씀을 하실 정도로 불효 자식이셨을까요?

하지만 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그보다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말씀인 것이지요. 즉,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뜻을 가슴 깊이 새기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좋은 친구(법정스님)


친구사이의 만남에는
서로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 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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