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1.12) - 연중 제1주일 금요일

2007. 1. 12. 오전 9:10:02

글자
2007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제1독서
히브리서 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복음 마르코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어제 아침,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참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자명종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따라서 일어나자마자 머리맡에 있는 자명종 시계의 시간을 보았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시계는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지각입니다. 저의 이 새벽 묵상 글을 받으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새벽 메일을 보내는 시간은 5시. 그리고 5시 30분에는 인터넷 방송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씻지도 않고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방송 준비를 합니다. 전날 미리 선곡해 두었던 곡을 뽑고, 동시에 새벽 묵상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시간이 조금 있어서 미리 묵상 글을 쓰고, 방송 노래를 미리 선곡해서 그래도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 새벽,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하는 것이 정말로 싫었습니다. 전날에 늦게 잠을 잤던 것도 괜히 화가 나고, 알람 소리를 내지 않았던 시계에 대해서도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요즘 계속 늘어나는 일의 양에 대해서도 화가 나네요.

아무튼 조금 늦기는 했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새벽 묵상 글을 올렸고 동시에 인터넷 방송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방 정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일을 시작하는데, 문득 늦게 일어난 것도 하나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계속 밤늦게 잘 수밖에 없어서 항상 피곤했었거든요. 하루에 3~4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아침 시간에 괜히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그러한 현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평소와 다르게 더 많은 시간을 잤기 때문이었지요. 늦게 일어났다고 화가 났지만, 이것 역시 저에게는 커다란 은총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휴식으로 힘차게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이나 시련도 이렇지 않을까요? 내게 다가오는 그 고통과 시련 때문에 화도 나고 원망도 하게 되지만, 사실 나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며 은총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해주시며 하시는 말씀,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구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즉,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떨까요? 그런 말을 도저히 할 수 없겠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도저히 예수님의 행동 자체가 축복이며 은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어디에서나 계시는 예수님을 느끼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축복과 은총을 깨닫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축복과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의심과 불신으로 은총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충분한 휴식을 취합시다. 좋더라구여.



수첩, 혹은 우정에 관하여(문창갑)


오래 가지고 다니던 수첩 하나 분실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조금은 서운했지만 바쁜 세상을 굴러다니다 보면 수첩 하나쯤 분실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수첩 하나의 비중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무작정 사람이 그리운 날 상처 많은 내 돌머리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끙끙거렸지만 수첩 속에 가두어 두었던 사랑하는 이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큰일입니다. 이제 나의 주소와 전화번호 그들이 기억해 주지 않으면 이승에서 다시는 그들을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아, 소중하고 소중한 그들과 나의 우정을 낡은 수첩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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