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1.27) - 연중 제3주일 토요일

2007. 1. 27. 오후 4:53:28

글자
2007년 1월 26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히브리서 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다섯 살인데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머리가 좋은 꼬마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서점에 가요!”

“응? 서점은 뭐하게?”

꼬마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계속 졸라대기만 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꼬마를 데리고 서점에 갔고, 꼬마는 교육 코너에서 ‘어린이 양육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엄마는 책의 제목을 보고서 궁금해 하며 물었지요.

“우리 아들, 왜 그 책으로 골랐어?”

그러자 태연한 표정으로 이 꼬마가 말했다고 합니다.

“응? 내가 올바로 양육되고 있는지 조사해 보려구!”

당찬 아이의 모습이지요?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구 우리 아기 똑똑하기도 하지…….’하면서 칭찬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기에 결코 좋게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하느님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을 때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과 언제나 함께 하면서 계속해서 많은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주고 계신데, 이에 반해 우리들은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을 던지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돌풍을 만난 제자들이 자고 계신 예수님을 향해 던지는 말처럼 말이지요.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치고 있는데도 배 안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지요. 한 번 자면 세상모르고 자는 스타일이라서 그랬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배가 요동을 치고 있는데, 또한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도 잘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계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제자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부 출신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단이지요. 따라서 그들의 힘으로 충분히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냥 가만히 누워 계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예수님께 불평과 불만을 던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부 출신이었던 그들이 목수 출신인 예수님을 안심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요.

지금 나는 과연 어떨까요? 혹시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은 하지도 않고 주님께 책임전가를 하면서 불평과 불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을 끝까지 믿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다시금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때 삶의 거대한 풍랑에서도 우리들은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그 위험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겁내지 맙시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좋은글' 중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마음의 세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행복도, 불행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사랑도, 미움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몸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몸보다는 마음을 더욱 잘 쓰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잘 쓰면 복을 받고,
마음을 잘못 쓰면 화가 임합니다.
마음을 경영하는 것이 자신을 경영하는 것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매일, 매순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음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온도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온도를
잘 조절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차가워질 때
우리는 교만해지고, 완악해집니다.
마음이 차가워질 때 사랑이 식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쉽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마음이 차가워지면 우주의 기운이 약해집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게 됩니다.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울수록 좋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따뜻한 사람은 친절합니다.
따뜻한 사람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합니다.
만물은 따뜻한 기운 아래 소생합니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비판적인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판적인 사람은 그 마음이
차갑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판은 삼가야 하지만
분별력은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분별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혜는 분별력입니다.
선택하고 결단할 때 중요한 것은 분별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냉철한 머리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따뜻해야 하지만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머리가 뜨거우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분별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하지만,
사람을 품는 것은 따뜻한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사십시오.
따뜻한 마음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