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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28일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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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10,32-3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처음에 빛을 받고 나서 많은 고난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견디어 내던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도 있고 그런 형편에 빠인 사람들의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동정했고 또 자기 재산을 다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일을 기쁘게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조금 더 있으면, 오실 이가 지체 없이 나타나리라. 그러나 나를 믿는 올바른 사람은 믿음으로 살리라. 만일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 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복음 마르꼬 4,26-34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로써 말씀을 전하셨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셨다.
생물학자에 의하면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유전체 : Genome)은 98.77%가 같고, 단지 1.23%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비록 인간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글자와 도형을 배우고, 숫자를 다루며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수화와 몸짓으로 사람과 의사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음성과 표정을 흉내 낼 수도 있고, 사람과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게임에서 이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침팬지를 통해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침팬지와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는 단 1%밖에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1%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침팬지를 형제요 자매라고 말할까요? 즉, 침팬지를 우리 인간과 똑같이 취급을 할까요? 아닙니다. 단 1%의 차이는 숫자상으로 아주 작은 차이이며 실제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모습과 행동을 보이고 있지만, 그 1%의 차이는 실제로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1%가 인간이냐, 동물이냐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1%라는 숫자는 엄청난 숫자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즉, 이렇게 작은 것이 나를 인간이냐 동물이냐를 결정하게 한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 1%가 너무나 작아서일까요? 이렇게 동물보다 못한 사람의 위치로 돌아가려는 많은 사람들을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아기를 유괴하고 아기 엄마를 살해하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식아동들에게 형편없는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람, 전처의 자식이라고 때려서 죽인 계모, 돈 있고 빽 있는 아이의 시험지를 대신 작성해주는 선생님, 외국인 노동자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는 업주들…….
올해 들어서 있었던 사건들 중에서 몇 가지만을 적어보았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그렇게 놀라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의 고유한 1%를 포기하고 어쩌면 동물보다 못한 모습을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의 소중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인간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바로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너무나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점점 자라 엄청나게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도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엄청난 힘과 능력이 넘치는 곳임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1%도 비록 작아 보이지만 엄청난 힘과 능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그 1%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답게 삽시다.
마음을 바꾸면 행복이 온답니다 생활이 궁핍하다 해도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해도 그 동안 나에게 그가 베풀어 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을 먹다가 돌이 씹혀도 돌보다는 밥이 많다며 껄껄껄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이 타거나 질어 아내가 미안해 할때 누룽지도 먹고 죽도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범하게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가를 미리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아파 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직위가 낮아도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니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세도 바람을 막을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았던 추억을 되살리고 앞날을 희망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줄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 한 번만 바꿔 먹으면 그 순간부터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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