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8.02.18)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2008. 2. 18. 오전 10: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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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8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엘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복음 루카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한 마을에 이웃으로 나란히 살면서도 서로 너무 다르게 사는 두 집이 있었습니다. 한 집은 오순도순 무척 행복하게 사는 데 비해 다른 한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식구들끼리 다투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매일 분란이 끊이지 않는 집에서 다정한 집안을 본받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저희는 식구들끼리 늘 다투기만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집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희는 별로 다툴 일이 없던데요?”

마침 그 집 딸이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과일 접시를 꺼내다가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그만 조심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엄마가 같이 유리조각을 주워 담으면서 말합니다.

“아니다. 엄마가 하필이면 그런 곳에 접시를 두었구나.”

옆에서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니오. 내가 아까 보니까 접시를 놓아둔 모양이 위태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바로 놓아두지 못해서 그랬소. 미안하오.”

이웃집의 사람은 그 집 식구들의 대화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고 합니다.

행복의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 탓이오.’라는 마음을 가지고서 자신을 낮추어 나갈 때, 그 공동체는 싸움보다는 화합과 평화를 간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내 탓이오.’보다는 ‘네 탓이오.’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화합과 평화보다는 분열과 다툼이 더 많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남과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즉,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우리들은 점점 불행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남과 내가 얼마나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네 탓이오.’라는 마음보다는 ‘내 탓이오.’라는 더욱 더 필요합니다. 그래야 화합과 평화를 가져오게 되고, 그래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내 주변을 바라보십시오. 내 주변에 행복을 가져다주었을 때,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집시다.



ET 할아버지(‘좋은생각’ 중에서)

“...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ET 할아버지’로 불리며 불꽃처럼 살다 2006년 12월 세상을 떠난 대안 교육가 채규철 선생이 세상을 향해 남긴 마지막 인사다. ‘ET 할아버지’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외계인 같다며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타 버린 사람’이라며 자신의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1961년 충난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교사직을 시작한 그는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 의료조합’을 설립하면서부터 복지운동가로 활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차가 불길에 휩싸이며 3도 화상을 입었다. 30여 차례의 수술을 거쳐 목숨은 건졌지만 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코와 입도 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다. 비록 청력을 잃고, 한 눈은 멀고, 녹아내린 손은 갈퀴처럼 돼 버렸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마음을 보고, 귀는 안경을 걸칠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음으로 상처를 덮었다.

그리고 다시 청십자 의료조합 일을 시작했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벗회’,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86년, 경기도 가평에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우며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험난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이미 타 버린 몸’에서 나오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삶에는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만약 사고가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먼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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