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8.02.13)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2008. 2. 13. 오전 9: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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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요나 3,1-10

1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어제 피정 강의가 끝난 뒤, 한 시간 넘게 성당에서 묵상을 하면서 이 시간이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떠올리고, 예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요? 더군다나 그동안 바쁜 본당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들어온 이 시간이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주님의 품이 이렇게 좋은데, 왜 그렇게 다른 외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본당의 복잡한 일로 인해서, 이 일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작년 말부터 하루에 묵주기도 20단 이상은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말끔하게 해결되었지요. 기도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으며,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기도를 할 때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떠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평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필요에 따라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자신에게 처한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을 원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면, 곧바로 주님이 아닌 세속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숭례문 화재사건이 큰 이슈입니다. 하긴 국보 제1호가 불타 없어져 버렸으니 얼마나 큰 아픔인지요. 그런데 숭례문을 방화가 단순히 개인에게 돌아가는 토지 보상이 적다는 이유였다고 하니 얼마나 어이없는지 모릅니다. 물론 당시에는 숭례문 방화를 통해서 사회적인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한 노인의 개인적인 불만이 전 국민을 아픔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방법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바로 더 큰 문제의 양상으로 바뀌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솔로몬보다 그리고 요나보다 더 큰 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믿지 않고 이 세상을 믿으려는 우리를 꾸짖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반대하면서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질책인 것이지요. 독서에 나오듯이, 과거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은 부족한 요나의 말 한마디로도 모두 회개하였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도 얼마나 회개의 삶을 살고 있었는지요?

나는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기쁨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겉으로만 보이는 기쁨을 그리고 꾸며진 행복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 주님께 기도하세요.



소중한 오늘 하루(‘좋은생각’ 중에서)

고운 햇살을 가득히 창에 담아 아침을 여는 당신의 오늘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시작합니다.

당신의 영혼 가득히 하늘의 축복으로 눈을 뜨고 새 날, 오늘을 보며 선물로 받음은 당신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의 고단함은 오늘에 맡겨보세요. 당신이 맞이한 오늘은 당신의 용기만큼 힘이 있어 넘지 못할 슬픔도 없으며 이기지 못할 어려움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가 길다고 생각하면 벌써 해가 중천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늘 하루가 짧다고 생각하면 아직 서쪽까진 멀다고 생각하세요. 오늘을 내게 맞추는 지혜입니다.

오늘을 사랑해 보세요. 사랑한 만큼 오늘을 믿고 일어설 용기가 생깁니다. 오늘에 대해 자신이 있는 만큼 내일에는 더욱 희망이 보입니다.

나 자신은 소중합니다. 나와 함께하는 가족은 더 소중합니다. 나의 이웃도 많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중함 들은 내가 맞이한 오늘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합니다.

고운 햇살 가득히 가슴에 안으면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을 맞이한 당신은 복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 당신의 오늘은 정말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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