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8.02.08)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2008. 2. 8. 오전 9:44:49

글자
2008년 2월 8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제1독서 이사야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네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만?“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복음 마태오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어떤 책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보았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폭군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는 살인마? 정답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랍니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어떠하겠어요? 자신이 읽은 책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하겠지요. 즉, ‘오직 이것뿐’이라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만을 내세우는 사람인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이 어떻게 무섭지 않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람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걸요? 자신만의 주장이 너무나 강해서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

이와 반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배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유연한 태도를 취하지요.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대화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죄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감옥에 수차례 투옥되어도 매번 수갑을 풀고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감옥에 보낼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 죄수가 어느 감옥에 들어가서는 나오지를 못했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쎄 감옥에 들어간 뒤, 탈옥하려고 먼저 수갑을 풀고 문의 자물쇠를 찾는데 자물쇠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이 자물쇠를 찾다가 결국은 탈옥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감옥은 원래 열려 있었다고 하네요. 즉, 그는 단지 자물쇠가 없다는 이유로 탈옥할 수 없다고 단정했던 것이지요.

융통성이 없는 사람.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지금 나의 모습이 혹시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 나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주시는데, 우리들은 단 한가지만의 방법만을 제시하면서 그 외의 것을 죄악시 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단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구세주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단식만이 그 사람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단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심한 신앙인,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족한 신앙인으로 판단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기준에서 단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맞습니다. 부족한 신앙인으로 단정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의 이런 생각은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음식을 먹지 않아 쇠약하게 되면서까지 회개와 기다림의 표시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기뻐해야 할 때에는 기뻐하고 슬퍼해야 할 때에는 슬퍼할 줄 아는,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편협된 나만의 사고를 버렸으면 합니다. 대신 주님처럼 넓은 마음으로 사랑을 철저히 실천하는 신앙인, 그래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합시다.



용기있는 선택(‘좋은 생각’중에서)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300여 년 전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알레그리의 명곡인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연주되고 있다. 음악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 곡이 유명해진 이유는 교황청이 이 악보를 봉인했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그 악보가 외부에 공개된다든가 시스티나 성당 밖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게다가 이 노래를 채보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문당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렸다.

그런데 1770년 용감하게도 그 아름다운 음률을 악보에 옮겨 적은 14세 소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음악계의 신동 모차르트였다. 아버지를 따라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던 모차르트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10분간 이 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고는 단번에 암기하여 파문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숙소에 돌아와 9개 파트로 구성된 이 곡을 악보에 옮겨 적으며 말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도 연주할 수 있는 악보가 없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채보 작업은 그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 악보는 즉시 출판되어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는 이내 유럽 전역에서 연주될 수 있었다.

두려움이야말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빼앗는 최대의 적이다. 눈앞에 보이는 두려움을 이긴 모차르트.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많은 이에게 굳이 바티칸을 찾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기회를 가져다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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