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5.06) - 부활 제5주일 다해

2007. 5. 7. 오전 12:22:29

글자
2007년 5월 6일 예수 제5주일 다해

제1독서 사도행전 14,21ㄴ-27

그 무렵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제2독서 요한묵시록 21,1-5ㄴ

1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복음 요한 13,31-33ㄱ.34-35
31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사랑하던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급기야 월남전까지 참전하게 되었지요.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험한 월남전에 보내놓고 무사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고국에 돌아가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위험한 고비를 하나씩 넘기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자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글쎄 폭탄의 파편을 맞아서 양팔을 절단해야만 했지요. 그리고 이 남자는 이러한 모습으로 그녀를 계속해서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을 먹고서 전사했다는 편지를 여자에게 보냈습니다.

양팔을 절단한 모습으로 남자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국에 돌아왔고 혹시 여자의 눈에 띄일까봐 숨어 살았습니다. 얼마 후,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가 행복해진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남자는 사랑하는 그녀가 너무나 그리워서, 멀리서나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 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지요. 그런데 이 남자는 깜짝 놀랄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쎄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월남전에서 전사한 사랑하던 남자를 생각하면서, 월남전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잃은 남자를 보살피면서 살았던 것이지요.

우리들은 사랑에 대한 말들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한 조건을 많이 달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을 마치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함께 만족하는 하는 사랑이 아닌, 나의 만족만을 위한 사랑은 참된 사랑이 절대로 될 수 없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바로 나만의 만족을 위한 사랑도, 상대방의 만족을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경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래를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서 손바닥을 편 채 가만히 있으면 흘러내리지 않지요. 하지만 꽉 잡으려고 손을 움켜쥐면 어떻게 될까요?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버리고 손바닥에는 조금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도 이런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면 사랑은 오래 머뭅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소유욕으로 서로를 꽉 움켜쥐면, 사랑은 어느새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꽉 움켜잡으려던 사랑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는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해 줍시다.



십자가 더미(앤드류 마리아,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 중에서)

한 사내가 죽어서 영혼이 연옥으로 끌려갔다. 천사가 이끄는 대로 들판으로 나가 보니 거대한 십자가 더미 하나가 나타났다.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천당으로 데려가자면, 먼저 그대가 이 십자가들을 저 멀리 보이는 언덕까지 모조리 옮겨 놓아야만 하오."

사내는 낙담하여 고개를 흔들었다. 십자가는 엄청나게 많은 데다, 옮겨 놓아야 할 언덕도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게다가 십자가는 한 번에 하나씩밖에 옮길 수가 없으니 일을 끝내자면 오랜 세월이 걸릴 판이었다. 사내가 불만을 토로했다.

"도무지 모르겠군요, 나는 지상에 있으면서 그런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고 질 십자가도 다 졌다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이 많은 십자가를 또 져야 한다니, 대체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그러자 천사가 대답했다.

"사실, 그대가 훌륭한 삶을 살았고 져야 할 십자가를 다 졌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 못할 거요. 하지만 선생, 이 십자가들은 그대가 지상에 있을 때 불만을 토로한 바로 그 십자가 들이오. 그대가 불만 속에 걸머진 십자가는 이곳 연옥으로 넘어와 그대가 죽은 후에 다시 한 번 걸머지도록 되어 있는 거라오."

천사의 설명을 들은 사내는 그제야 알아듣고서 거대한 십자가 더미에서 십자가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러면서 지상에 있을 때 이 모든 십자가를 불평하지 않고 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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