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4.30) - 부활 제4주간 월요일

2007. 4. 30. 오전 8:41:45

글자
2007년 4월 30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복음 요한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저는 물건 찾을 때마다 항상 고생을 합니다. 왜냐하면 내 눈에 지저분한 것이 보이면 보이지 않는 서랍 속에 쏙 집어넣거든요. 따라서 물건 하나 찾으려고 하면 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지면서 난리를 치러야 합니다. 어제 역시 어떤 물건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 두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서랍을 여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서랍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지요. 간석4동 성당으로 온 지 넉 달, 그 동안 정리는 하지 않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넣다보니 이제 서랍에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합니다.

그 결과 제가 원하는 물건도 손쉽게 찾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겠지요? 워낙 지저분한 서랍이다 보니 심지어 서랍을 열어보는 것조차 짜증이 나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큰 맘 먹고 서랍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것도 필요한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한 것 같고……. 그러다보니 처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과감하게 버리자.”

그러자 도저히 정리되지 않을 것처럼 복잡했던 제 서랍은 금세 정리되었습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곧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주님을 따른다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가 가진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때, 즉 물질적인 욕심과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들을 과감하게 버릴 때 더욱 더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문’으로 나타내십니다. 문이란 어떤 문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구원의 문입니다. 양이 양 우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을 거쳐야 하듯이, 우리들이 원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원의 문을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이 곧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문을 건널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는 곧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계명을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제까지 어떻게 살고 있었나요? 과감하게 버려야 주님께서 제공하는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가 있는데, ‘차마 이것만은…….’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아쉬운 집착 속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의 구원에 대해서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는 오늘입니다.


서랍 정리를 합시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좋은 글' 중에서)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축복받는 사람은
베품을 미덕으로 여기며
순간의 손해가 올지라도
감수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욕심을 부릴 줄 모르고 비움이
곧 차오름을 아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은
덕을 베풀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일에 대한 보상과
이득을 따지지 않는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가슴이 따뜻하고
예쁜 사람은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을 욕심없이 바라보는
마음의 눈과 맑은 샘물처럼 깨끗하고
아랫목처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