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4.20)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2007. 4. 20. 오전 8:02:58

글자
2007년 4월 20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5,34-42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복음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어제 새벽 묵상 글에도 썼지만,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제가 속해 있는 남동지구 사제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신부님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리들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숙소 근처의 횟집에 들렸지요. 맛깔스러운 음식과 싱싱한 회에 우리들은 모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많다보니 배가 점점 불러왔고, 음식을 넘기는 속도도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이제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그때 주인아주머니께서 그릇에 무엇인가를 가져오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이었습니다. 소금도 없고 기름칠도 되어 있지 않은 일명 ‘맨 김’과 김을 찍어서 먹을 수 있는 간장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말했던 신부님들이 “야, 이런 것도 나오네. 맛있겠다.”하면서 다시 수저를 드십니다. 그리고는 밥 한 그릇씩을 뚝딱 없앴지요.

그렇게 귀한 반찬도 아니고, 값이 비싼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요즘에 이런 맨 김에 간장 찍어서 식사 하시는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의 반찬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그 어떤 값비싼 반찬보다도 귀하게 생각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것? 그런데 이런 말도 있지요.

“만약 부자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처럼 먹어야 한다.”

즉,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돈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부자가 건강한 가난한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제나라 환공은 큰 부자였지만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백이는 굶어 죽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그를 애도한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돈일까요? 아니면 명예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것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묻지요. 이에 필립보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립보는 돈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레아가 나서서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보리빵과 물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지요. 소년은 남을 너그럽게 섬기고 자기 이익을 챙기지 않고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상기시킵니다. 바로 가난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큰 기적을 일구어내십니다. 바로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도 많은 것을 남게 하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이제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라고 하십니다. 바로 당신 공동체가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을 축적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물이 부족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새벽에 저희 성당에 있는 기도 틀에 꽂혀 있는 기도 지향을 하나씩 펼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삐뚤삐뚤 적은 글씨가 가득한 기도 지향을 보니 토요일에 성당의 어린 아이들이 꽂아 놓았나 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다수가 돈과 관련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또 복권 맞게 해주세요.”

“우리 집 부자 만들어 주세요.”

“아빠가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예수님도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임을 보여주셨는데, 돈과 연관시키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필립보처럼 꿈나무라고 불리는 아이들부터 ‘돈’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서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돈, 돈, 돈’을 외쳤기 때문이 아닐까요?

도나단 스위트프는 “돈을 머릿속에 두되 마음속에 담지 마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마음속에 담도록 하십시오.


아이들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 맙시다.



멋진 휴먼 스토리(박성철, '느리게 그리고 인간답게' 중에서)



어느 육상 선수가 쓴 이 글은 삶을 살아가는 진지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왜 달리냐고? 달리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고통은 매일 존재한다.

이젠 쉬워졌냐고? 별 차이 없다. 달리기 시작한 첫 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고통이다. 쉬워진 것이 있다면 그건 다만 좀 더 먼 거리를, 좀 더 짧은 시간에 달린다는 것뿐이다.

고통은 똑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자는 누구인가? 육체인가? 나인가?

달리는 동안 나는 늘 확인한다. 내가 지배자라는 사실을. 내가 운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배신하며 뒤흔드는 세상에서, 달리기는 희망과 확신을 준다.

왜 달리냐고? 난 이기기 위해서 달린다. 정말 중요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금 당신의 삶이 무섭고, 고통스럽고, 겁나고, 아프고, 걱정되고, 한숨이 나온다 해도 가슴속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십시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어렵게 얻어지는 법. 세상에서 가장 큰 승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럴듯하게 이겨나가는 모습, 그것처럼 드라마틱한 장면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뜨겁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휴먼 스토리. 그 멋진 드라마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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