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4.27) - 부활 제3주간 금요일

2007. 4. 27. 오전 8: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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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7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9,1-20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복음 요한 6,52-59
그때에 유다인들이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자기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요즘 프로야구가 한창입니다. 특히 저는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즘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팀을 아주 열심히 응원하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그저께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야구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나운서석 바로 옆에 관중석이 있는지 듣기에 그리 좋지 않은 소리들이 방송을 통해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쌍시옷 소리가 아주 강하게 나는 소리들 그리고 단어의 맨 앞에 ‘개’라는 말이 들리는 소리들 말이지요. 재미있게 야구를 즐겨 보고 있는데, 간혹 나오는 그 소리가 인상을 쓰게 만듭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욕지거리 듣는 것이 좋습니까? 자신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말 듣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소리, 예쁜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이나요? 욕하는 그 모습이 멋져 보입니까? 아니면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사람으로 보일까요? 아니지요. 그 사람이 바르게 보인다고 말하면 분명히 비정상적인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의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지도 못하는 욕인 동시에, 자신의 위신도 깎일 수밖에 없는 욕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습관 때문입니다.

이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을 고치기란 큰 맘 먹지 않는 한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나와 이웃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습관이라면 우리들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이 이렇게 다투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유다인들의 나쁜 습관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생각하지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직접 그토록 놀라운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며, 또한 깊은 감동을 주는 말씀들을 그토록 많이 하셨는데 왜 예수님을 반대하는가?’

바로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면 무조건 반대하고자 하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지 못하면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방법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우리들은 아니었는지요?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게 하는 가장 쉬운 좋은 방법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더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드러내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그 반대의 방법을 씀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지 못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위신도 깎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나쁜 습관들. 그 습관들이 곧바로 고쳐지지 않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삶의 가능성(박성철, '느리게 그리고 인간답게' 중에서)



개그맨 김제동은 재치 있는 입담과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따스한 마음 등으로 우리에게 여러 종류의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 적으로 한 편의 잠언시 같은 그의 짧은 말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Life란 단어에 if가 들어가는 이유는 우리 삶에 아직도 많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한길 씨의 『눈뜨면 없어라』에 나왔던 명구절 중 하나입니다.

삶은 우리에게 모든 것의 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에 어떤 것을 주느냐에 따라 삶 또한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숨겨둔 포장된 선물 상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선물 하나하나를 정성껏 뜯어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선물의 포장을 뜯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수고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 인생에 숱하게 널린 가능성들을 잡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부지런히 뛰다녀야 합니다. 삶에서 즉흥곡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삶에게 당신의 땀과 눈물을 많이 줄수록 삶 또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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