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 김혜원

2014. 12. 22. 오전 3:20:03

글자


먼지 / 김혜원


 


1. 무게


 


체중계를 꺼내려다


나보다 먼저 올라앉은 먼지를 본다


저것도 무게라고 저울 위에 앉았을까


털어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저 가뿐한 내공


내가 눈금처럼 꼼꼼히


몇 장의 졸업장과 얼마간의 통장으로


몸집 불리는 동안 너희는 세상을


깎고 갈고 부서지며 삭으며 살아왔구나


저울 위에 앉아 제 발자국 헤아리다가


세상 변두리 어디쯤 다시 찾아 날아올랐겠지


버려야만 이루어지는 저 가뿐한 무게


달 수조차 없는 그 삶에


문득 마음 무겁다


 


2. 높이


 


먼지도 세월을 견디면 높이를 갖는구나


어둠 속에서 말을 잊다보면 눈이 밝아지는 법, 나는


저 허름한 생의 목록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말이 벗어놓은 하품 바스러진 각질의 한숨 비틀대던


머리카락과 맥없이 흘러내리던


낡은 옷의 넋두리 나뒹굴던 보풀의 푸념 몇 낱 희미해진 거울의 깨진


비명도 몇 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뒷걸음쳐 이 구석 찾았을 게다


내일이 꼭 오리라 믿었을 그들


나는 오지 않은 날의 달력을 찢어


숨죽여 쌓인 어제의 높이를 가만히 들어 올린다


 


3.


 


차 안에 쌓이던 먼지


어느 날 흔적이 없어졌다


닦은 적도 없는데 저희끼리 뭉쳤다가


알갱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다


어디든 다시 떠돌고만 싶은 것 같아


조심조심 발판을 걷어 밖에 뿌려준다


순간 바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일제히 질주하는 저 하얀 맨발들


길이란 열망이란 얼마나 서늘한가


천 길 절벽은 허공에도 있어


지상으로 추락하여 얼룩지는 생이여


흙물이 제 지나온 길 가라앉히듯


빗물에 씻겨 다시 먼 길 떠나는구나


밤하늘에 담겨 반짝반짝 눈을 뜨는 별들도


떠나온 별을 찾아 몇억 광년 속으로


저렇게 먼지처럼 뛰어든다던데


나 이제 몇십 킬로의 동력을 켜고


내게 남은 시간의 벌판으로


 



댓글 2

  • 2014년 12월 22일 오후 3:30

    ...먼지의 세상이 새삼 ...? 뭔가를 느끼게 하는글이군요...

  • 2014년 12월 23일 오전 10:39

    미로라는것은 눈떤사람도 헤메는 법,하물며 두눈 떤 소경이 미로를 얼마나 헤메는지!먼지야 너는 나를 알겠지! 하기야 나도 한낫 먼지일뿐이지!시인의 무한한 상상에 경탄합니다.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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