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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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한기철 실바노 신부님 2011-04-27 614

수도회에 입회하기 이틀 앞두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묵주를 주셨다. 당신의 손때가 깊게 묻어 반질반질해진 나무 묵주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기도를 하셨을지 금방 가늠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항상 내가 입은 옷들은 사촌 형들의 옷들이었고 심지어는 사촌 누나들의 옷들도 입었다. 지금 내가 그런 나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정말 그랬다. 아버지께서 약주를 과하게 드시고 들어오셨던 어느 날 그날도 어머니는 동생과 내가 입을 옷을 친척집들에게서 가져와 한 아름 마루에 놓아두셨다. 그것을 보신 아버지께서 마음이 아프셨는지 어머니께 몇 시간 동안 뭐라 하셨고 어머니는 가만히 계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어머니의 손에는 하루 종일 묵주가 쥐어있었다.

 

어머니는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에 늘 노심초사하셔서 우리들이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는 분들과 계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그 계의 주주가 모든 사람들의 돈을 가지고 사라진 일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붙잡고 울면서 말씀하셨다. “너의 대학 등록금이었다. 대학 등록금이었어...” 그리고 쓰러지셨다. 몇 년 후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간 사람이 사과하며 다시 우리들 앞에 섰을 때 모두 다 외면했지만 어머니만은 그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묵주 기도를 하셨다.

 

대기업 사원들과 살벌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물건 주문 계약을 성사 시켜야하는 회사에 다닐 때 극심한 피로와 압박감에 시달려 괴로워하며 지내는 나를 보시고 어머니께서는 참으로 마음 아파하셨다. 그리고 생활비 때문에 하루하루 힘들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래라”하시며 더욱 열심히 묵주 기도를 하셨다.

 

수도회에 입회하기 사흘 전날 밤, 그렇게 적극 후원해 주셨던 어머니께서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하셨는지 내 방에 들어오셔서 작게 아주 작게 말씀하셨다. “네가 수도원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묵주기도를 바쳤던 그것을 나에게 건네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기도 중에 만나자.”

 

매년 5월이면 항상 생각나는 어머니와의 추억들은 ‘성모님’을 ‘가정’을 그리고 ‘기도’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자연에 있어서 5월의 싱그러움이 ‘산뜻함’, ‘촉촉함’, ‘시원함’의 뜻을 포함한다면 ‘성모님’, ‘성가정’, ‘기도’는 믿는 사람들을 영혼의 싱그러움으로 초대하는 말들이라 생각한다.

 

이제 종신서원을 하고 사제가 된 지금, 나는 가정을 위해서 성모님께 매일 기도를 바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기도한다. 그들이 가정을 위해서 성모님께 바치는 그 기도가 5월의 싱그러움처럼 되기를 바라며...

 


한기철 실바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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