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원리

2016. 7. 12. 오후 9:44:56

글자

생각하라! 당신의 진짜 희망이 무엇인지를…

『무지개 원리』 차동엽 신부 인터뷰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그는 사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희망예찬론자로 기억한다. 그는 말한다. 언제나 희망하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그마저 힘들면 아무 거나 붙잡고 희망이라 우기라고. 그런 점에서 그는 ‘절대 희망주의자’다.


무작정 무엇인가를 희망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큰 시대. 단 얼마간의 자투리 시간마저도 기회비용을 따져야 하는 우리에게 그의 말은 기운을 북돋우는 격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덕담으로만 머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또 말한다. “정말로 희망을 가져 본 적 있느냐”고.

차동엽 신부

1 희망은 잠재력을 불러일으킨다

차동엽 신부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한 지는 벌써 7년째다. 2006년 그는 저서 <무지개 원리>를 통해 희망적인 태도, 희망적인 사고가 얼마나 커다란 큰 성공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부님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법을 알려준’ 이 자기계발서는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가장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사이 차 신부는 바빠졌다. 목회활동과 집필활동 외에도 1년에 600~700회에 이르는 강연, TV출연 요청에 이어 이제는 멀리 해외에서도 그를 찾는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 당장 내일의 일자리를 약속하기 어려울 만큼 나빠진 경기. 우리는 자꾸 그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싶어한다. 어쩌면 우리가 끊임없이 그에게 묻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이냐고….


“나에게 희망을 강요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희망을 가지라 가지라’고 외치는 희망 강요에 피로를 느낀다고요. 하지만 그 말에 저는 되물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럼 절망이 답이겠느냐?’고 말입니다.”


불경스런 말이겠지만, 그의 희망예찬은 어떤 면에서 종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을 향한 무한한 믿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그저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식의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희망이 끌어내는 사람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그 잠재력을 이용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오기(傲氣)’, 희망을 더욱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는 ‘호기(浩氣)’, 그리고 버틸 수 있는 ‘강기(剛氣)’가 성공에 이르는 에너지가 되어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 진짜 ‘꿈’을 가질 때 더 강해지는 ‘희망’

하지만 그렇게 희망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면 우리는 왜 자주 좌절을 맛보는 것일까? 희망을 가지고 높은 스펙을 쌓아 놓고도, 왜 취업 전선의 그 높은 경쟁력을 뚫지 못하고 청년들은 허덕대고 있는 것일까?


“꿈과 희망은 다릅니다. 꿈은 목표고, 희망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에요. 그래서 진짜 희망은 꿈이 좌절되었을 때 시작됩니다. 이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주는 게 희망이거든요. 여기서부터 콘텐츠가 채워져요. 다시 도전하려는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서 방법을 궁리하고 방향을 결정하고 나가게 되지요.”


동시에 차 신부는 진정한 희망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꿈은 분명하고 가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꿈은 인생의 목표이자 지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목표의식을 가지는 이조차 많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행복한 삶을 살겠다’, ‘명예로운 삶을 살겠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등의 목표는 인생을 관통하는 자신의 가치관이자 꿈이다. 그러나 ‘○○대기업 입사’, ‘□□공기업 취업’, ‘☆☆고시 합격’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은 이 수단을 꿈인 목표와 혼동한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목표가 같을 수는 있어도 수단은 다르죠. 사람마다 장점과 성향과, 조건이 다르니까요. 희망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수단을 찾아내는 것인데, 다들 목표는 모른 채 같은 수단에만 매달리죠. 예를 들어볼까요? 한 젊은 여성에게 꿈을 물었더니, ‘큰 욕심 없이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아 1년에 한번 정도 해외여행을 가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결과적으로 이 여성이 원한 것은 소박하고 행복한 삶이에요. 그런데 본인이 그걸 모르니 무의식적으로 돈으로 그 행복을 사겠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니 안정되고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가겠다는 결론에 도달해요. 그리고 무한 경쟁에 뛰어들죠. 과연 본인이 원하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차 신부는 지금 청년들이 꿈이 없는 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을 만날 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 정말 원하는 궁극적인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충고한다. 많은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원하는 진짜 꿈을 찾아야 한다. 꿈이 분명해지면 희망은 어지간한 좌절에 지지 않고 거세게 고동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해요. 남의 것이 아닌 나의 인생. 그것을 위해 나만의 꿈, 내 인생의 궁극적 목표와 가치를 찾아야죠. 그래야 꿈이 보여요. 희망도 강해지고요.”


3 절망을 학습시키는 사회, 절망에 대비한 매뉴얼이 필요

차동엽 신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10,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강연을 통해 청년들을 많이 만나는 차 신부 역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군대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청년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여러 노력을 쉼 없이 계속해 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청년들의 자살 소식을 접할 때면, 늘 희망에 차고 에너지 넘치는 신부조차도 때때로 무기력감을 느끼곤 한다고 했다.


“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지요.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은 절망에 차 있습니다. 이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뻗는 손이 닿지 않을까 더럭 겁이 나기도 해요. 그래도 힘껏 팔을 뻗고 손을 만져주는 수 밖에 없어요. 외롭고 절망에 차 있을 땐, 명확하고 논리 가득한 설득보다는, 맞잡은 손의 온기, 같이 나눠먹는 밥 한 그릇이 훨씬 큰 위로가 되거든요. 시커먼 사냥개 같은 절망이란 놈이 사람을 잡아 자살로 끌어내리는 건 순간이예요. 정녕 그 순간을 이기게 하는 것은 사람의 온기입니다.”


그래서 차 신부는 혹시 주변에 힘들어 하는 친구나 동료가 있을 땐 꼭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밥 한 그릇, 술 한 잔을 나누라고 당부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심각한 청년들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그는 ‘절망’이 학습되고 유행하는 사회 분위기를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노래 등과 같은 대중 문화에서 나타나는 절망과 자살의 코드, 유명인들의 자살 뉴스 등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은 ‘절망’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자살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이들은 쉽게 절망하고, 쉽게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고스란히 사회 분위기로 환원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자살과 절망을 부른다.


절망 바이러스는 우리의 뇌 속에 침투해 생각을 변화시킨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절망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하고,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절망은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절망을 거짓이라고 말한다. 절망을 무시해야 절망을 이길 수 있다. 또한 차 신부는 절망에 대비하는 법을 학습하고, 절망 대비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살 생각이 들 때는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절망이 가득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입니다. 절망에 휩싸일 때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평소 생명존중과 자아발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적인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 만의 행동 지침을 정해놓는 것도 좋아요. 

나는 강연을 듣는 친구들에게 ‘절망은 거짓이다, 절망을 이기는 것은 희망이다.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라는 세가지 글을 적어 다니라고 말해요. 눈 앞이 아찔해지는 순간, 이 글귀를 찾아서 읽으라고요.”


4 지금 우리 사회는 자가 치유되어 가고 있는 중…

차동엽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희망을 가지는 인식, 긍정적인 사고를 위해 ‘희망놀이’를 제안한 바 있다.


희망놀이의 룰은 간단하다. 어떤 현상에서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찾아내어 보는 것이다. 엔저현상로 국가 경쟁력이 약해졌다면, “아쉽지만 이 시기를 이겨내면 우리 경제에 내성이 더 생길 것이다”고 생각해보는 식이다. 희망예찬론자인 그는 우리 사회가 유래없이 힐링을 찾는 현상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너무 힘이 들어 힐링을 찾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달리기 일변도의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힐링을 찾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일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부정부패와 강력범죄에 대한 뉴스도 그에게는 절망거리가 아닌 되려 희망의 씨앗이다.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더러움이 눈에 들어와야 하고, 환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환부가 보여야 하듯, 사회의 환부가 들어나고 사람들이 반응하면서 문제가 고쳐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더러 잘못된 사회의 구조를 외면하고 뜬구름 같은 희망만을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서서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이들을 언제나 지지해 왔어요. 다만, 나의 역할은 그 속에서 좀 더 아프거나 힘들거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정말로 ‘희망’이 가득해지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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