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준비?
우리 생의 끝날에 하느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대처하기’위해
이승의 삶에서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얄팍한 계산이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삶의 끝에 비정한 심판이 있으리라고는 왠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이승의 생이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조금은 슬퍼지고 허망함을 느끼며,
동시에 삶에 대해 진지해지고 자신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싶어지는데,
심판이라는 그 무서운 단어를 굳이 연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생애의 끝, 그 자체가 심판이 아닌지.
이 이승의 삶을 무한정 사는 것이 아니라 눈물 같은 청춘을 흘려 보내야만 하고,
쓸쓸히 노년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심판이 아닌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 생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 서러움인데,
또한 때때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서러움인데,
생이 끝나는 날 냉정한 심판이 있다고 왠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이승의 삶이 다하는 날, 우리가 믿고 희망하는 것은,
사랑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숱한 죄와 못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해 주실 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과 희망 때문에
지금 여기서 그분과 함께하는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신앙의 신비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금항아리 정희완 신부(안동교구 모전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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