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수필] 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
평범함의 은총
김동원 프란치스코(영화감독)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해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을 뵙게 된 것은 순전히 상계동 철거민들 덕분이었고 난 그저 촬영만 했을 뿐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습이나마 자주 뵙고 촬영까지 할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드리며 기억을 더듬어본다.
1986년 10월경 나는 기록영화를 찍는답시고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는 나의 대학 은사이자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청계천 판자촌 시절부터 빈민운동을 해오신 정일우 신부님이 먼저 들어가 계셨고 매일 미사를 집전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부님은 추기경님의 영적 지도신부였고 그 때문인지 추기경님은 자주 그곳을 방문하셨다. 철거가 한창이던 11월엔 두 번씩이나 방문하셨는데, 당시를 촬영한 테이프에는 울부짖는 철거민들을 위로하시며 함께 성가를 부르시는 장면, 밤늦게까지 머무르시며 주민들과 담소하시는 장면이 담겨있다.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은 1986년 성탄미사를 집전하시는 추기경님의 모습이다. 성탄미사에 추기경님이 오신다는 정보를 들은 용역깡패들은 미사 몇 시간 전 천막을 허물어 불태우고 전기를 끊고 포클레인으로 땅까지 뒤집어놓아 도저히 미사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땅을 메웠고 추기경님은 야외미사를 강행하셨다. 그날 추기경님은 “오늘 예수님이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의 강론을 해주셨다. 꽤 추운 날씨였는데도 미사 분위기는 정겨웠고 마음이 무척 따뜻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1987년 4월 행정대집행을 당해 상계동에서 완전히 쫓겨난 철거민들이 명동으로 몰려갔을 때 추기경님은 따뜻하게 맞아주셨고(그때도 지금처럼 사목위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겠지만) 천막을 치고 지내라는 허락을 해주셨다. 그리고 1988년 초 부천으로 옮겨갈 때까지 약 열 달 동안 추기경님을 매일같이 뵐 수 있었다. 저녁 무렵이면 추기경님은 성당 안을 산책하시곤 했는데 자주 천막 안을 둘러보시며 주민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성당 안을 뛰노는 꼬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분은 평상복 차림으로 주민들을 스스럼없이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 하며 부르시곤 했고, 주민들도 그분을 어려워하지 않고 서로 농을 주고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분은 정말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난 그런 재주가 그분의 특별함이 아니라 평범함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추기경님은 처음 상계동에 방문했을 때 정일우 신부님에게 “이런 판잣집은 재개발되는 것이 낫지 않나?” 하고 귓속말로 물으셨다고 한다. 그만큼 추기경님은 세상사나 빈민들 사정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곧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철거민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셨다.
그분은 물질이나 권위가 아니라 평복으로, 몸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셨다. 철거민 천막을 손수 들추어 들어가는 일이 그분에겐 자연스러웠고 즐거움이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아직껏 천주교인임을 자임할 수 있는 것도 그분에게서 받은 평범의 은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동원 프란치스코 - 영화감독,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의 대표. 철거민들의 삶을 다룬 ‘상계동 올림픽’, ‘행당동사람들2’,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송환’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경향잡지, 2009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