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7 (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2013. 1. 27. 오후 12:54:28

글자
제 1 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의 말씀입니다. 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30<또는 12,12-14.27>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시다가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시작점에서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밝히시는 출사표와 같습니다. 이를 이사야서의 말씀에 따라 선포하셨으니, 당신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통한 기름부음받은이로서 가난한 이, 잡혀간 이, 눈먼 이,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과 은혜를 안겨다 주시고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에, 사법 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금의환향한 한 선배가 모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수험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때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사법 고시를 보셨는지요? 법조인이 되고자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 선배는 ‘현실적으로 직업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것이 사법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나 검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참으로 실망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지닌 진정한 목표와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면 그 일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공생활이 지닌 근본적인 의미를 의식하면서 그 생활을 시작하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모든 일에 대해 한층 더 근본적인 성찰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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