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 (목)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2012. 9. 27. 오전 7:40:13

글자
제 1 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세례자와 엘리야는 공통점이 있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권력자의 비행을 꾸짖었으며, 간악한 여인의 원한을 산 것도 똑같습니다. 헤로데가 자신의 불의를 고발하는 요한 세례자를 처치하자 군중들 사이에 예수님을 두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은 요한이 다시 되살아나신 분이라 하였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헤로데는 군중들 사이에 퍼진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저버렸을 때 찾아오는 양심의 소리가 불안입니다. 헤로데는 회개하라는 요한 세례자의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권력자라 하더라도 죄를 지은 헤로데의 마음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 것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에게 불편한 진리이셨습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했지만 대면하기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어둠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빛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고통을 피하고자 빛을 파괴하거나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럴수록 양심의 바늘은 자신을 더 아프게 찌릅니다. 죄를 짓고는 못 산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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