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토)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2012. 9. 15. 오전 12:54:54

글자
제 1 독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또는 루카 2,33-35>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씨는 남편과 사별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26세밖에 안 된 외아들이 죽자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벽에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도 화가 나 그것을 땅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을 데리고 가신 하느님을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을 원망하고 증오하던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온종일 하느님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하느님,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하느님은 계셔야만 해.”
시간이 흘러 그녀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하느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가끔 생각해 봅니다. 살기는 살았겠지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그녀가 하느님을 원망하고 울부짖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히시는 아드님을 보러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드님께서 겪으시는 고통 하나하나가 어머님의 마음을 찔러 꿰뚫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미움과 증오가 끝까지 아드님을 괴롭히는 그 자리에 고통을 참으며 아드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성모님을 그토록 강하게 만든 것은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성모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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