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권위, 흔들리는 교육
정유성(서강 대학교 교수 / 교육학)
날씨가 뒤집혔는지 입춘 추위가 매섭다. 얼음처럼 꽁꽁 언 우리 삶 터에는 아무리 가만히 귀를 대고 들어 봐도 봄이 오는 소리는커녕 찬바람만 쌩쌩 분다. 새해가 밝은 지도 한참인데 우리 마음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왜 이럴까? 무엇보다도 지난 한 해 남짓 동안 짝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삶 터 곳곳에 동티가 나고 사회가 온통 헝클어지는 일을 겪었지만 어디에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더욱 스산하게 하는 것은 가뜩이나 갖가지 위기로 헝클어진 가운데 벌어진 교육 현장의 일이다.
우리 교육 이대로 안 된다는 걱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교육 현장은 이대로 안 될 정도가 아니라 거의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은 체벌이라는,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비교육적 수단을 써서라도 교권을 지키려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에 반발하여 선생님을 고발하고 아버지를 고발하겠는가?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시내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휴대 전화로 통화를 한다고 시비가 일어나 교수와 학생이 주먹다짐을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쯤되면 교육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나 할 정도로 갈등과 불신, 그리고 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폭력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가장 비교육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뜩이나 사회 곳곳이 무너지고 앞날이 캄캄한 때, 그나마 앞날을 기약하고 준비하는 일인 교육에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대를 걸고 이들을 잘 교육하여 지금보다 나은 앞날을 꿈꾸곤 한다. 아마 그래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 우리 땅의 교육열이 생겨났을 것이다. 하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내며 살다 보니 자신의 삶보다는 자라나는 세대의 삶에 기대를 걸고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교육하는 일을 당연히 여긴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교육을 마치 '신주 단지' 모시듯 해 왔다. 그런데 이제 교육은 거꾸로 앞날을 열어 주는 몫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려는 우리 발목을 잡는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가로막힌 듯 암담한 지금, 교육은 한 줄기 빛이 아니라 우리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달리 어찌 해볼 수도 없이 교육에 목을 매달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신주 단지처럼 모셨던 교육은 '애물 단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사목 1999년 3월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