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장미
고등학생일 때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한적이 있다. 그때 장미꽃 할머니를 만났다. 봉사를 시작하고 3일 정도 지나서였는데 할머니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못가는 분이셨다. 게다가 자식들 모두 일을 하느라 수발을 들어 드릴수 없어 하루종일 누워만 계셔야 했다. 할머니는 기력은 다 하신듯 했지만 눈이 참 맑은 분이셨다.
나는 할머니가 검사를 받으러 가시는 것과 화장실 가시는 것을 돕고 돕고, 말 동무도 해 드렸다. 할머니는 나에게 무척 미안해 하셨지만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아직도 가슴깊이 남아 있는 기억은 첫날 참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와 함께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데 할머니가 여러겹으로 싼 봉지 안에서 꼬깃한 오천원을 꺼내시더니 내 손에 쥐여 주셨다. 안 받으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그 맑은 눈과 마주쳤을 때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절대 받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받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엉엉 울었다. 그 작은 도움에 너무나 큰 마음을 주시는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한 없이 메여 왔기 때문이다. 다음날 병원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마침 비오는 수요일이라는 생각에 장미 한송이를 샀다. 꽃을 받아든 할머니는 소녀처럼 얼굴이 붉어 지셨다.
그 뒤 할머니는 병세가 더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기셨고, 눈 조차 제대로 뜨지 못 하셨다. 자원 봉사가 끝난 뒤에도 한 두 번인가 찾아 뵈었는데 할머니 곁에는 내가 드렸던 빨간 장미가 잘 말라 그대로 꽃병에 꽃혀 있었다.
요즘도 비오는 수요일이면 문득 할머니 생각에 젖는다. 지금은 건강 해 지셔서 아들 며느리와 행복하게 살고 계시겠지....
<좋은 생각> 2001년 12월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