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리] 유항검 일가 생가, 묘소터 초남이 성지

2001. 9. 22. 오후 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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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검 일가 생가, 묘소터 전북 완주군 초남이 성지

 

 

전라도 사도 유항검 일가 순교지, 초남이 성지를 아십니까

 

1801년 신유박해 당시 박해 초기부터 마지막 무렵까지 고난을 받으며 일가족 모두가 순교한 신앙의 명문가가 있다. 바로 '전라도의 사도'로 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일가이다.

 

신유박해 당시 유항검 일가는 즉 유항검과 그의 부인 신희, 동정부부로 유명한 맏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요한), 조카 유익검의 아들 유중성(마태오), 동생 유관검의 처인 제수 이육희가 함께 살던 생가터가 바로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14-1에 위치한 '초남이 성지'이다.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 일가가 전라도 지역에 가톨릭 복음을 전파하던 '신앙의 못자리'일 뿐 아니라 유항검 일가가 순교한 후 1909년 일가족 유해가 치명자산으로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곳이다.

 

이처럼 초남이 성지는 호남 천주교회의 발상지로, 순교자 유항검 일가의 생가요 묘소가 있던 곳으로, 또 '한국 천주교회 순교사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로 불리고 있는 유중철, 이순이 동정부부가 생활했던 삶의 자리로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초남이 성지는 또 전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운영되었던 '교리학당'이 있던 곳이며, 호남 교회에서 최초로 미사성제와 성사가 집전 된 곳이다. 아울러 서양 선교사를 영입해 조선 천주교회가 박해에서 벗어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을 목적으로 서양 선박을 요청할 구체적 계획을 세웠던 곳이 바로 초남이 성지이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 교회사에 있어서 한 중심 축으로 자리잡았던 초남이는 신유박해때 유항검 일가가 모두 순교하고, 대역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그 집터는 연못으로 만들어 누구도 다시는 그 터에서 살지 못하도록 흔적을 없애버리는 '파가저택' 조치로 유항검 생가가 저수지로 변하면서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초남이 성지가 개발된 것은 1985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유항검 생가터인 '파가저택'(대역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그 집터는 파서 연못으로 만들어 누구도 다시는 그 터에서 살지 못하도록 흔적을 없앤 것)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교구 총대리였던 김환철 신부(현 초남이 성지 주임)와 호남교회사연구소 김진소 신부가 유항검과 사돈간인 이우집의 문초기록과 지역 토착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파가저택'지와 유항검의 생가 터에서 약 400여m 떨어져 있는 교리학당 터도 확인했다.

 

또 생가 터에서 서북쪽으로 500m쯤 떨어져 있는 재남리 바우백이에 있던 유항검 일가의 묘소는 유해들이 치명자산으로 이장되기 전까지 전주교구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순례 발길이 끊이지 않던 장소였다.

 

초남이 성지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아 동정부부 요한, 루갈다의 신앙 배움터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유항검 생가 터에 아담하게 지어진 피정의 집에서는 매주 부부들과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피정이 열리고 있다. 또 앞으로 교리학당 터와 바우백이 터를 매입해 신앙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최근 초남리 입구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조성하는 등 순례자 맞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김환철 신부는 "초남이 성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져 많은 젊은이들과 부부들이 이곳을 찾아와 동정부부 순교자들의 신앙을 배워 아름다운 성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초남이 성지 순례 문의 : 063-214-5004.

 

<평화신문, 645호(2001년 9월 2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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