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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며느리 보셔야 할 나이에 며느리를 맞으시니 얼마나 좋으십니까?”
“농담 하지 말게! 이 사람아!”
식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어머니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주고받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그 동안 시름이 하나 둘 녹아 내려 기쁨으로 바뀝니다. 지난 10일 동안 어머니도 뵙고, 막내 동생 혼인 미사 때문에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막내 동생이 사십이 넘었기에 특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니는 무척이나 걱정하셨습니다. 저에게 가끔 전화하시어 걱정을 털어 노시곤 하셨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이 놈을 장가보내야 할 터인데...”
“어머니, 언제 우리 마음대로 된 적이 있나요. 꾸준히 기도해주세요.”
아마 제 기억에 적어도 십년은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쁜 며느리 맞게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오묘한 일인가?
어머니를 보면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어머니의 세례명이 엘리사벳인지라 더욱 그러합니다.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루카1,57-58)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그 친척들의 기쁨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할 나이에 아이를 가져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신비스러운 일인가? 그 동안에 인간적인 고독과 번민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은총의 선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은 주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세례자 요한은 주님을 맞이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러나 그 과정을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광야는 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떠나 주님의 은총의 삶을 선택하는 수련의 마당입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1,80)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에게 세례의 정화 의식을 베풉니다. 세례는 주님을 맞이하는 겸손의 틀입니다. 즉 인간적인 틀을 깨고 주님의 길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자기중심적인 틀을 깨고 은총의 여정으로 나아갈 때 주님의 거룩한 길을 마련 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아버지 즈카르야는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아기 요한을 주님께 봉헌하러 갔을 때 이름을 부르는 문제를 갖고 친척들과 논쟁을 하게 됩니다. 전통을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불러야 합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인간적인 전통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섭리하심을 따릅니다.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루카1,61)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루카1,63)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틀을 깨고 주님의 섭리하심을 따랐을 때,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게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잉태 사실을 반신반의 했던 즈카르야는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 온전히 승복할 때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모든 것이 정리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루카1,64)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세례 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늘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세례자 요한과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아버지 즈카르야의 교훈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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