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말

2006. 10. 29. 오후 10:36:15

글자

도움의 말


대부분의 본당에서 매일 성체성사가 거행되며 한 해에 적어도 한 두 번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집전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사에 참여하는 순간과 그 순간을 기억하는 며칠만을, 그것도 의식의 화려함과 의식 중에 느낀 감정적인 기분만을 기억에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또한 우리 신앙생활의 출발이며 정점이라는 거룩한 미사 전례는 어떤가? 평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주로 노인분들이거나 여성들이다. 미사를 어느 나라에서는 '서비스'(service)라는 안내판 항목에 넣는다. 그런데 이 서비스라는 개념이 신자들에겐 하느님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필요와 아쉬움을 어루만져 주고 들어 주는 편의시설과 편의제공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신자들의 원의와 관계없이 공짜로 제공된 '희생제사'(sacrifice)라는 측면에서, 하느님의 침묵을 부채질(?)하고, 십자가의 제사를 더욱 제사답게 한다는 역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나마 신자들이 전례나 성사와 연관되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관심사는 "주일미사 한 번이라도 빠지면 고해성사 보아야 합니까?" "본당 신부님께 고해성사 보지 않기 위해서 주일미사 빠지지 않기로 했대요!" "왜 하필 월드컵 시즌에 견진교리를 집어 넣으셨어요?" "견진 받은 신자가 그럴 수가 있어?" 정도이다. 이러한 표현 뒤에 숨겨진 전례생활은, 종교가 신자들에게 주는 계율에 대한 의무와 그 의무를 궐한 데서 오는 부담과 죄의식이다. 전례와 성사가 인간을 억압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라는, 본래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현상에 드러난 피상적인 일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성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더욱더 풍요로워 진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받게 되는 주님의 은총과 현세적인 축복, 그리고 은총으로 부여되는 지위에는 관심이 많지만, 각 성사의 은총이 의미하는 주님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성사생활에 대해서는 지극히 소극적이거나, "착하게, 잘 살아야지요!" 하는 등의 막연한 결심뿐이다.

이미 이 책의 전편이랄 수 있는 예비자 교리서 '일하며, 쉬며, 또!'는 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래서 여기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 나오는 말씀 중에 성사생활과 연관되는 구절들을 모아 놓았다. 주님 승천 후 작성된 바오로 서간은 교회의 성사를 살피는데 좀더 구체적일 수 있다. 특별히 부활하신 주님의 영인 성령을 받아 활동하던 바오로를 통해, 성사생활의 모습을 '부르심'이란 관점에서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으리라는 생각도 가미되었다.

이 책을 이용하는 방법은, 우선 지도자와 함께 '글쎄'라는 항목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성사생활에 무관심한 일반 신자들이 성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엉뚱한(?) 견해를 접하면서, 자신들의 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성사와 견해와 느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각 성사들이 의미하고 지향하고 있는 방향에 들어가기 전에, '둘이'라는 항목을 통해 옆사람과 둘이 자신들의 성사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갖는다(자신들의 경험이나 느낌을 '나는'이라는 항목 아래에 기록해도 좋다.).

그리고 지도자의 강의로 '배움'을 통해 각 성사의 단계적 의미와 성사생활을 살펴본다. 다음 견진자들이 다같이 그 성사와 연관하여 바오로 서간에서 찾아낸 성서구절을 '말씀'에서 읽고, 20분 정도 '묵상'한 다음, '나눔 자료'를 가지고 옆 사람과 둘이 또는 그룹별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그룹별로 대화를 나눌 때에는 그룹 장소로 간 후, 성호를 긋고 다시 한 번 '말씀'을 읽고 난 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 때는 조장이 사회를 보고 서기를 두어 나눔 내용을 기록하여, 그룹모임이 끝난 후 전체 모임에서 발표하거나 제출한다.). 그리고 다같이 모여 지도자와 함께 '새빛'이라는 항목을 통해 성사예식의 본질적인 말씀이나 연관된 기도나 구절을 되새기며, 성사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성사생활에 대한 새로운 다짐으로 한과를 정리하게 된다.

끝으로 이 글을 준비하는데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꼼꼼하고 세세하게 교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본당의 홍스테파니아 수녀님과 유형래 세영 알렉시오 형제와 구역·반장 및 3구역 3반의 반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과정을 책으로 출판해주신 성바오로 수도회 이창욱 신부님과 직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천주강생 1995년 4월 14일

성금요일에

심 흥 보 베드로




견진교리 교과 과정표


과 목

주 님 의 부 르 심

주요 성서

시작

성사생활

"나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자"

-하느님의 사랑이신 주님과 주님의 교회 그리고 교회의 성사

에페소서

1,3-14

1

세례성사

"나를 선택하라"

로마서

6,2-14

2

견진성사

"나를 믿고 의지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

갈라디아서 5,16-6,8-10

3

성체성사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성체

에페소서

2,13-22

4

고해성사

"나처럼 사랑을 완전히 이루라"

1고린토서

13,1-13

5

성품성사

"나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가자"

필립비서

2,1-16

6

혼인성사

"내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르익히라"-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

에페소서

5,21-33

7

병자성사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

-인간의 한계에 구애받지 말라

로마서

8,18-30

피정

피 정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

골로사이서

2,20-3,17

부록

성사로 간직할 만한 표지들







 


차 례




 

도움의 말

시작. 교회의 성사

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세례성사

2. 성령께 의지하여-견진성사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성체성사

4. 가장 좋은 길-고해성사

5.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성품성사

6. 둘이 한 몸을-혼인성사

7. 고통에서 영광으로-병자성사

피정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

*부록1 성사로 간주할만한 표지들

1. 말씀의 전례와 말씀 나누기

2. 기도

3. 거룩한 신심행위

4. 희생-단식과 자선 그리고 봉사

5. 축성-축성생활회(수도회와 재속회)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

(1) 수도자 종신 서원

(2) 동정녀 축성 예식

(3) 재속회 서약

(4)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선서

*부록2 견진성사 예식

*부록3 견진교리 성서색인






□시 작

교회의 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사는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세례성사 때는 그저 줄줄이 나갔다 들어갔다 하느라고 정신 없었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요?"

"첫영성체는 너무 어릴 때 해서…."

"주님과 하나가 된다고요? 성체를 모신다고 배부른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게 어떤 건지도…."

"성사가 내 생활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둘이

성사를 받던 순간을 기억해 보고,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세례성사를 받으며 내 이마 위에 차가운 물이 떨어져 흐를 때, 내 머리를 하얀 미사보로 감싸 줄 때…, 두 손에 초를 들고 주님께 나아가듯, 제대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내게 해주신 내 유아세례 때의 이야기나 내 어린 시절의 성사생활 이야기….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떨리는 가슴으로 고해실에 들어가 죄를 고백할 때, 죄를 용서받고 후련한 마음으로 고해소를 나올 때…,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먼저 말하고 정작 고백했어야 할 죄를 잊어버리고 그냥 나왔을 때…,. 말하기가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두려워 고백하지 못하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만을 힘주어 말했을 때…,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을 모시고 황홀해 했을 때…, 정말 주님의 몸인지 의심했을 때…

나는…….



말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영적 축복(에페 1,3-14)

1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4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7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14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움

주님은 성사생활을 통해 "나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에페 1,3b) 하느님은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세상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생기어라!"는 한 말씀으로 만드시고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당신이 지어 내신 세상 만물을 사랑해 주셨다.

그런데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는 하면서도 감사드리며 섬기는데는 충실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느님을 괴롭혀 왔다. 인간들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일마저 저질렀다. 인간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했고, 지배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원망하거나 하느님을 떠나기까지 했다.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지만 인간들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을 골고루 사랑하셨지만, 인간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만을 따져, 옳고 그름과 자기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때마다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셨다."(히브 1,1 참조) 인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 듣고는 하느님께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불행하게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을 타이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지만, 인간들은 자주 그리고 점점 더 하느님을 떠나 악의 영향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인간과 관계된 세상은 점점 파괴되어 갔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와 질서가 깨지고 있었다.

하느님은 이런 인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불쌍해 보였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주신 길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길인데도, 인간은 그 길을 피하고 죽음의 길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어떻게 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당신이 만드신 인간에게 사랑의 길을 걷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신 끝에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기로 결정하셨다.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둘째,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을 가르쳐 주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마리아라는 여인의 몸을 빌려 인간으로 태어나셨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배고파하셨고("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마르 6,31b), 피곤하여 쉬고 싶어하셨으며("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마르 6,31a),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슬피 울었고("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하고 말하였다."-요한 11,35-36),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공포로 떨었다("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하시고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으면 수난의 시간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하시며"-마르 14,33b-35).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당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6).

예수님은 온 정열을 다 쏟아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골로 1,19-20) 그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죄없는 인간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에페 1,4 참조).

셋째,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에페 1,5) 주님은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다른 인간과 사회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가지셨어도 그러한 인간 조건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갖가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어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자기의 이익을 챙기며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웃을 십자가에 죽이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주님은, 인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현실적으로 행하는 행위의 결과가 인간이 바라는 것을 주기보다는 전혀 다른,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웃 사람과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유혹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인간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잡고 있던 악의 세력과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셔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마 8,15; 갈라 4,6 참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희망이요, 구세주가 되셨다.

넷째, 예수님의 아버지 하느님은 아들의 순명을 보고 예수님을 부활시켜 주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 2,9-11)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에페 1,13b) 성령은 교회를 이끄시며 교회의 성사 안에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시는 성체성사를 이루게 하심으로써 우리 삶의 양식을 주신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교회를 이룬다. "이 때부터 안티오키아에 있는 신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c) 성령은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골로 1,18a)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1고린 12,27)

다섯째, 성령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교회가 되게 하신다. 교회는 주님의 사명을 이룰 때 비로소 교회가 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b-20)

성체성사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는다. 주님은 세례성사를 통해 "나를 선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듣고 몸담아 온, 세상의 여러 가지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버리고, 주님과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내 인생의 길로 선택함으로써, 주님의 자녀들인 교회 공동체에서 새로 태어난다.

주님은 견진성사를 통해 "나를 믿고 의지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내 생각과 내 계획을 버리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교회를 이루어 나간다.

주님은 성체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십자가상의 제사인 성체성사 안에서 나를 봉헌하고, 주님으로부터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힘을 얻어, 세상에 나를 또 하나의 성체로 바친다.

주님은 고해성사를 통해 "나처럼 사랑을 완전히 이루라."고 부르신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세상의 죄악과 유혹을 이기고, 주님처럼 흠없는 어린 양이 되어 사랑을 완성해 나간다.

주님은 성품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가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 주님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내가 살고 머무는 그곳에서 기쁜 소식을 실현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전한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이와 함께 교회를 이루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사도가 된다.

주님은 혼인성사를 통해 "내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르익히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함으로써 혼인의 서약을 무르익혀 나간다.

주님은 우리에게 병자성사를 통해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부르신다. 우리는 주님처럼 죽음에 구애받거나 굴복당하지 않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여기서 채워 나간다. 주님과 형제들에게 나를 바치고, 나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시킴으로써 주님의 구원사업을 이루어 나간다.

여섯째, 주님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성사생활을 통해 "나와 함께 아버지께로 가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생명의 길을 전례와 성사 안에서 보고,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으며, 우리가 직접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주님과 함께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묵상과 나눔 자료

1. 2천년 전에 살아 계시던 예수님을 내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십니까?

2. 나는 주님의 삶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라 성사생활을 함으로써 생명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새빛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로마 12,1)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차례..

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 세례성사 -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제 버릇 개 못 주는데…"

"세례만 받으면 천국에 가는 것 아닌가요? 다들 그러잖아요?"

"어떨 땐 세례 받은 신자가 더 하던데요? 고해성사만 보면 된데요!"

"하느님은 신자 편이니까, 잘못해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감싸 주시고 용서해 주시겠죠?"


둘이

나는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았습니까? 세례받을 때 어떻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선택하여 어떻게 살고 있는가?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부모님이 시켜 줘서? 결혼하기 위해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걱정 없이 살고 싶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를 위로해주고, 나와 함께 해 주고, 나를 도와줄 형제·자매들이 필요해서? 내 일이 잘되기 위해서? 주님을 알고 따르기 위해서?

나는…….

말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로마 6, 2-14)

6 2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3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5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6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 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7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8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9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11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12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13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서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가 하느님을 위한 정의의 도구로 쓰이게 하십시오. 14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배움

주님은 세례성사를 통해 "나를 선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첫째,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로마 6,2) 우리가 처음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시는 나쁜 짓을 안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당에도 잘 나오고,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느덧 세례 받기 전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 이다. 지금도 죄를 짓고 있고,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 하면 되지!" 하면서 점점 미루고 게을러지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세속화되었다.

세례는 한 번 받았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례성사는 완전하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흐트러질 때마다 거듭 회개하여 내가 받은 세례성사를 완전하게 이루어야 한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 6,8)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분을 주님이시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내 잘못과 그릇된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새롭게 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신자들과 한 식구가 되어 함께 살기 위해 세례성사를 청했다.

셋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6,9) 죄를 짓고 나면 우리는 부끄럽고,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 예수님을 뵙기가 두렵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은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시지만, 우리를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지금까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저질러 왔던 악한 습관을 버리기란 아주 힘들다. 끊으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나를 끌어당긴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로마 7,18b-20)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 6,14) 주님을 선택하면 회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님 은총의 지배를 청하라. 주님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주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하면, 주님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악습은 사라진다. 그러면 주님 수난과 부활의 힘이 우리를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해주실 것이다.

넷째,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내가 보기에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다른 어느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다만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를 부르신 주님께 응답하면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갈라 3,26)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 잘못의 책임을 돌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한 식구가 되자. 다같이 한 식구가 되어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교회를 이루어 나가자.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에페 4,3-4)

다섯째, "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6,12) 우리가 세례 때 한 결심과 다짐은,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고 단지 마음 속의 이상을 그린 것일 수 있다. 이제 그 다짐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죄에 떨어졌던 경험을 바탕 삼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자. 내가 하고 싶고, 가지고 싶고, 얻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해야 할 것과 주어야 할 것과 베풀어야 할 것을 먼저 하자. 그러면 우리는 죄의 지배를 벗어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11)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의 수난에 참여합시다. 나가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자. 또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그 고통이 힘들기도 하지만 얼마나 살맛나는 길인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용기를 북돋워 주자. 이렇게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내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자.


묵상과 나눔 자료

1. 내 생각과 내 마음을 죽이고 주님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를 주님께 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주님께만 전적으로 희망을 두고 살 결심이 섰습니까?

3. 지금 내 이웃 중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어떻게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렵니까?


새빛

†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에게

세례를 줍니다.



차례..

2. 성령께 의지하여

-견진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어릴 땐, 기도하면 꺼진 전등불도 들어오곤 했어요…. 신앙은 어릴 때, 뭘 모를 때의 얘기 아닌가요?"

"신앙이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그저 위안이나 삼는 그런 거 아닌 가요?"

"아우슈비츠에서, 총칼 앞에서 하느님이 계시던가요?"

"어떻게 그걸 뿌리칠 수 있어요. 그렇게 안 하면 난 죽는데."

"세상은 험한데 성당에만 가면 편안해요. 성당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둘이

여러분은 어디에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무엇을 통해 힘을 얻습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잘 먹고 열심히 일하는데, 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사람들을 많이 그리고 별 문제 없이 사귀는데,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놓은 업적과 재산을 유지하는데, 내 자녀들과 후손의 안전과 행복된 미래를 마련하는데,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데,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가는데….

나는…….

말씀

성령께 의지하여(갈라 5,5.16-6,2.8-10)

5 5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16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17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19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20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21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24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25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26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6 1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니,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2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8자기 육체에 심는 사람은 육체에게서 멸망을 거두겠지만 성령에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9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합시다. 꾸준히 계속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10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합시다. 믿는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배움

주님은 견진성사를 통해 "나를 믿고 의지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첫째,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갈라 5,5) 우리의 희망은 구원이다. 구원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을 궁극적으로 다 합친 것일 수도 있다. 그 희망사항을 다합친, 보다 근원적인 희망인, 그 구원은 바로 오늘 내게 "너는 죄가 없고 또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하느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지었다. 그리고 누구 앞에서도 흠 한점 없이 깨끗하거나, 나 자신이 나를 돌이켜 생각해봐도 훌륭하게만 살지 못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온전히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다. 물론 그것은 우리만의 온전한 책임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죄 없는 아들을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로마 8,3)

이렇게 구원은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은총이다. 성령은 이러한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로마 5,2)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날 "너는 죄가 없고 또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심판의 선고를 받고,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되기를 기대한다(이러한 심판의 선고를 바오로 사도는 '의화(義化)'라고 했고 공동번역 성서에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인다.'라고 번역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오늘, 여기서, 이미, 마지막날에 얻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미리 알아서 기뻐하고 있다.

둘째, 그런데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우리의 매일매일이 기쁨에 넘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가? 우리가 기쁜 소식을 받았다면 당연히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로마 8,5-6)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하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을 보아라. 이것을 가져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을 배워라. 그리고 내 말을 들어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고 네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한번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이웃을 밟고 올라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경쟁사회! 다른 이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그 희생이 나의 이익으로 합쳐질 때 비로소 내 행복이 보장된다.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사회!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기쁨보다는 씁쓸함과 비애를 안겨준다. 그리고 내가 빼앗았던 그것을, 언제 다시 다른 이에게 빼앗길 지 몰라 불안해한다.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이웃을 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경쟁과 경제사회 안에서는 미덕과 성공이 될지 모르지만, 인간사회 안에서는 죽음과 공포이다. 이것이 육체적인 세상에서 주는 평화이다.

셋째,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에 찬 생활을 회복할 수 있는가?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로마 8,14-16)

우리의 확신에 찬 믿음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세적인 입신양명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구원을 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사도직과 연결된다. 주님의 사도직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님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의 생명을 바치라고 한 그 사명을 실천하는 직책과 임무이다. 또한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나나 우리 가족의 안일과 평온을 얻는 데에서 그치도록 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봉사함으로써, 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게 한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로마 12,1bc) 이렇게 봉헌하는 우리의 노력은, 주님을 세상 안에서 증거하는 교회 공동체의 사도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가진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위협과 박해를 이겨 내려고 한다. 이때 우리의 믿음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로마 8,26-27)

한편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세상을 더 가난하고 더 구조적으로 악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다. 경제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것은 결국 경제구조를 더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넷째,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갈라5,25) 이렇게 세상의 부정과 불의라는 유혹과 위협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우리의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눈치를 보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나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부활하셔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호소에 내가 직접 응답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1고린 12,7.11) 내가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고발할 용기를 받았다면, 다른 이는 불의를 이기는 진실을 말없이 실천할 선물을 받았고, 또 다른 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그리스도처럼 수난할 수 있는 거룩한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모두 다 합쳐져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교회의 공동사업이 된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갈라 6,2) 그때 우리는 교회를 이루고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을 이룰 것이다. 교회의 사명, 곧 주님의 구원사업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그 일 말이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이룰 그리스도의 법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로마 8,17b)

다섯째,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요한 3,8a)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은 일들을 갑자기 겪게 된다. 그 일이 반가운 것이든 아니든, 하느님은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도록 허락하신다. 그 때 우리는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사소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커다란 부담과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지며, 당혹해하고 궁금해한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2b)

그때 성령은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깨닫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주님의 뜻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신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는,

㈀ 주님이 왜 우리에게 그 일을 겪도록 하셨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 주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대응하라고 일러 주시는지를, 성서와 성전 안에서 식별하여 정확히 깨닫게 된다.

㈂ 발견하고 식별하여 깨달은 것을 성령께서 일러 주신 주님 사랑의 그 방법대로 실천하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곧 주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삶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주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은 또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된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요한 15,26b-27) 우리는 이러한 삶을 '성령을 따라 사는 삶', '복음을 사는 삶', '주님의 말씀을 사는 삶'이라고 한다.


묵상과 나눔 자료

1. 성령의 도우심을 믿습니까? 그런 도우심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땠습니까? 지금, 시대와 세상이 내게 요구한다고 하면서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내가 맺고 싶고 나에게 필요한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새빛

( ),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

천주여, 우리에게 하신 일을 완성하소서. 또한 신자들 마음 안에 성령의 은혜를 보존하시어, 신자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증언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완수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 아멘.



차례..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성체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사는 신부님이 드리는 거잖아요."

"앉았다, 섰다,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어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데 그걸 먹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배부른 것도 아니고…."

"희생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닌가요? 나도 살기 힘든데 무엇 때문에…"


둘이

내 가슴 속에 지금도 뿌듯한 감정으로 남아있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계속 기억나고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그것은 무엇입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생일날 친지들과…, 시험에 합격했던 날…, 첫 데이트하던 날…, 결혼하던 날…, 승리한 날…, 내 집을 장만하던 날…, 가난한 이들이나 환자들에게 땀을 흘려 봉사하던 날…

나는…….

말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3-22)

2 13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15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17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18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21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22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배움

주님은 성체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에페 2,13b)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성체성사는 예수님 자신이다.

둘째,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에페 2,14)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구별하는 담을 헐라고 하셨다. 맏아들이라는 유다민족과 다른 민족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인간의 편애의식과 그에 따른 인간의 차별구조를 없애시고 평등을 선포하셨다(요한 2,13-22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에페 2,15b) 또한 주님은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가나안 여자의 믿음-마태 15,21-28), 당신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 곧 교회를 이루게 하셨다.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에페 2,16)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이웃을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잘못으로 잃었던 생명을 다시 주신 하느님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야 할 이웃!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과 생명을 받고, 주는 신앙의 신비를 살아간다.

또한 이 신비를 간직한 새 민족인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특혜와 차별이 없는 나라, 원수와 적이 없는 나라, 미움과 증오가 없는 나라, 굶주림과 소외가 없는 나라, 억압과 묶임이 없는 나라, 탐욕과 착취가 없는 나라, 챙기는 것이 없고 나누는 나라!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 나라는 바로 평화의 하느님 나라이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이다.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약속이며 하느님 사랑의 징표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1고린 1,23a) 우리는 십자가 안에서 하늘과 땅을 본다. 곧 우리가 그리는 하느님 나라와, 지금 여기서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을 본다. 하느님 나라를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본다면 현실은 지옥이다. 십자가는 현실을 지옥으로 판단하라고 하지 않는다. 현실을 떠나 신심 속으로 숨을 수는 없다. 그것은 도피이지 희망을 성취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은 더럽고 혼탁한데, 한 사람만 세상에서 건져 성당과 종교생활이라는 깨끗한 어항에 넣는다고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구원을 찾는 우리의 신앙은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고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관심은 언제나, "세상을 어떻게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넷째,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듯이 우리도 세상에서 죽어야 한다.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4) 나를 내어 준다는 것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세상과 보이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도 없다. 욕망뿐이다. 조금 가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 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으면 자신의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희망을 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마저도 기꺼이 내놓는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다시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로마 8,11b)

다섯째, 십자가는 세상의 죄악을 모두 안고 있다. 사람들의 미움과 원망과 탐욕과 질시의 결과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수치와 모욕의 대표이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5) 주님을 따르는 길, 복음의 길,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길은 바로 이 모욕과 수치의 인생이다.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를 한 몸에 받고 사는 인생이다.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길은 사회의 지도자들에겐 질시의 대상이 될 것이며, 세상에 희망을 둔 이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부활에 이르는 유일한 영광의 길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1고린 1,23b-25)

여섯째,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십자가상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드리며, 주님의 생명을 받아 모신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님께서 주는 애정과 음식을 받아먹고 부모를 닮아가듯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주님을 닮아간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를 주님의 백성으로 만드신다.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에페 2,22) 주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주님을 중심으로 교회가 된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세상에 양식으로 내놓게 된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세상에 양식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는 성체성사를 선포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1고린 11,26)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이다. "나와 하나 되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애쓰자꾸나! 나와 함께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만들자꾸나! 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4b) 그리고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로 3,15-16a.17)


묵상과 나눔 자료

1. 나는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 누리고 있는가?

2. 주님이 만드시는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데 참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새빛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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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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