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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의 : <기도(祈禱)에 관하여>
0. 시작에 앞서
오늘은 견진교리의 두 번째 날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견진교리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리며 걱정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어제 밤에는 <구성애의 ’아우성’>이라는 프로그램을 밤늦게 보았습니다. 어제 밤(11/4. 수. MBC-TV)에 나온 내용의 제목은 ’청소년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방법에 대한 7가지 제안’인가 어쨌는가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거기에서 제시하는 방법과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내용을 비교해 보니 방법에 대해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참석자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고, (2) 적당한 감정을 섞어서 흥미를 내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모습에 대한 두 가지를 이야기 드리며 여러분의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있게 하면서 해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다 할 수 있는지 도움의 방법을 먼저 구하고 싶습니다.
한 주간에 두 번씩 하려니 여러분도 힘드시죠. 그러나 때로는 해야 할 일이라면 기분 좋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억지로 한다면 사고치기 십상입니다. 사고란 해야 할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몸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고 있는 일을 좋게 본다면 그가 맺을 삶의 열매는 좋은 것이 될 것이고, 억지로 하는 마음과 생각과 그리고 자세를 갖고 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가 맺을 삶의 기쁨은 없을 가능성이 더 큰 것입니다.
딱딱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며 한 가지 댈 수 있는 핑계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신중함에서 이루어진다’는 변명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런 핑계를 대지 않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첫 번째에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의 시간에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고 말입니다.
1. 기도란 무엇인가? -- 개념
가장 먼저 시작할 말은 ’기도라는 말의 뜻’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모임에서 기도(祈禱)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러나 ’기도의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아... 뭐 그런 거 있죠. 알면서 왜 물어요? 창피하게....’하는 정도로 정작 대답해야 할 본질을 비켜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그 말의 뜻을 아는 경우도 있지만 입에서만 맴도는 말을 표현하지 못해서 우물거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기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답을 들어본다 *****
예전에 정리된 교리서<트린덴틴 공의회 정의 320조목>에는 ’우리 마음을 들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마음이 어디 따로 있는지는 저도 몰라도 어쨌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음을 든다’고 했으니, 하느님이 계시는 곳도 우리가 사는 땅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라는 첫 번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마음을 들어올릴 수 있는지도 따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가 좀 어려우니, 현대의 표현을 적용해서 말씀드리죠. 기도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대화’입니다. 흔히 대화란 보이는 상대자끼리 오고가는, 드러나는 말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알아듣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자신 없어 하는 사람들은 개신교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나서 한다는 소리, ’야! 개신교 사람들은 기도 잘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란 ’하고 싶은 말을 폭탄을 터트리듯’ 무조건 쏟아 붓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풀이이지, 올바른 의미의 기도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끼리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것이 적용됩니다. 이야기하자, 대화하자고 하면서 한쪽편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으면 우리는 귀를 씻어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한쪽을 세뇌(洗腦:상대자로 하여금 일종의 정신마비상태에 함입시켜 어떤 사상·주의를 주입하는 일)시키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굳이 기도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인간 사이의 대화는 그런 방법으로 되지 않습니다. 대화는 오고가는 쌍방관계입니다. 내 것을 쏟아 부었으면, 그 다음 순간에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소리는 우리가 하는 말처럼 그렇게 시끄럽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
2. 기도의 목적? 기도의 종류?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는가?
두 번째로 말씀드릴 내용은 기도의 목적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것은 힘을 얻어서 우리의 육신이 살게 하자는 것이고, 물을 먹는 것은 갈증을 해소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강조하는 것도 다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은 다들 목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는 일들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대화인 기도’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가? ’기도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하느님을 흠숭하기, 감사드리기, 용서를 청하기, 바라는 것을 말씀드리기의 네 가지입니다. 즉 흠숭, 감사, 용서를 구함, 청원이 그것입니다.
흠숭이란, 하느님께 인간이 드리는 공경이며 그분을 찬미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감사드리는 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셔서 지금까지 있게 해 주셨음과 나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에 대한 마땅한 표현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잘못한 일들<=죄>에 대해 뉘우치며 새로운 다짐을 바치는 일이고, 네 번째의 목적인 청원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일들을 베풀어주시기를 말씀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들 네 번째의 것만을 잔뜩 늘어놓은 다음에 ’나는 기도 다했다!!!’고 말합니다. 착각하면 하느님과 별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순서를 바꾸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음으로 기도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두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묵상기도와 염경기도가 그것입니다. 드러나는 말이 없는 기도가 묵상기도이고, 우리의 입으로 소리를 내어 함께 하는 기도가 염경기도입니다. 이 염경기도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을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이러한 목적과 이러한 종류로 설명할 수 있는 기도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 질문은 어려운 것이지만, 대답은 간단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들어 하느님 앞에 앉아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뜻을 실천할 테니, 힘을 달라고 우리의 시간을 바치면 됩니다." 그것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3. 성서에 나타난 기도의 모범들
여러분, 오늘은 성서를 가지고 오셨겠죠. 많은 분이 가져오지 않으셨더라도 오늘은 성서를 읽겠습니다. 읽고 싶은 내용은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3.1 솔로몬의 기도(1열왕기 3,6-9 => 구약성서 524 - 525면 )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가 어느 날은 기브온의 산당에서 천마리나 되는 번제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솔로몬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이에 대한 솔로몬의 응답은 한편의 기도입니다. 함께 읽으시죠.
구약성서 열왕기 상권 3장 6절-9절까지입니다.
****** 성서를 읽는다 *****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갖는 방법이 솔로몬의 기도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하느님을 먼저 찬미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것이 기도의 모습입니다.
3.2 아브라함의 기도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기도
다음으로 함께 읽고 싶은 부분은 창세기 12장 1-3절입니다. 구약성서 15면입니다.
*** 성서를 읽는다 ***
아브람의 자세는 그 엄청난 일에 그저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브람이 보인 기도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아브람은 하느님의 친구로 나옵니다. 하느님이 겸손한 아브람의 모습을 보시고 그렇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3.3 기도의 올바른 자세 -- 필립비 서간의 바오로의 기도 (2,6-11) (신약 편 378면)
이 부분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찬미하는 노래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립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 성서를 읽는다 *****
이 세상에 사는 사람 그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그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가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내용은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당신을 죽음에 내어놓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이고, 그 모습을 통하여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 찬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지내며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나쁜 것은 아니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선악의 가치도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라면 ’악하다고 할 것도 없겠지만 선하다고 봐줄 일도 없을 것’입니다.
3.4 하느님의 사랑은 어떠한가? -- 요나의 이야기 < 구약편 1535면 이후> ** 읽지 않는다 **
하느님은 누구를 사랑하시는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우리가 질문하고 응답을 듣고 싶어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성서 요나서를 보면, 하느님은 요나 예언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니느웨라고 하는 도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욕을 안겨준 아시리아의 수도입니다. 거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해서 하느님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또한 징벌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이 보이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하러 가야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다른 곳으로 도망갑니다. 그랬다가 커다란 물고기(=고래?)의 뱃속에서 삼주야를 지낸 다음 처음의 그 도시로 다시 파견됩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죠.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왜곡된 심성이 남아있었습니다. 선포한 다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자 뾰루퉁해져서 하느님께 항의합니다. 이렇게 자비를 보이실 하느님이 무엇 때문에 헛걸음하는 고생을 시켰냐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 커다란 아주까리가 자라서 하루를 시원하게 지내게 해줍니다. 또 한번 탓하는 그에게 하느님은 선언하십니다.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4,11)
4. 우리 시대에 제시하는 가톨릭 교회의 기도들
가톨릭 기도서를 보면 많은 기도문들이 나옵니다. 요즘 새로 나온 책을 보면 예전보다 그 기도문의 수(數)가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여러 가지의 기도가 나옵니다. 앞서도 기도의 목적을 말씀드리기는 했습니다만,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모으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인간이 읽을 수 있는 언어이긴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뜻만을 담은 것은 아닌 것이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 기도서에 나오는 기도들을 구별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일상 기도가 있습니다. 성호경, 주의기도, 성모송.... 삼종기도에 이르기까지 기도문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온 기도입니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기도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가 있습니다. 독립돼 있는 별도의 새로운 기도문은 아니고 앞에 말씀드린 일상기도문의 내용을 목적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순서를 정한 기도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의 몸이 쉬기 위하여 돌아온 쉼터에서 가져야 할 감사의 자세는 어떠한지, 인간들에게 펼쳐지는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묵주의 기도의 성격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흔히들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허락을 얻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도 <9일 기도>입니다. 이 <9일 기도>는 묵주기도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길에 신앙인으로서 함께 하여 하느님이 되시는 구원의 길에 우리도 조금이나마 동참하고자하는 기도로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사순절에 성당에서 함께 하기도 합니다.
또한 몇 가지 성월기도가 있습니다. 교회는 1년 중의 몇 달을 특별한 정신을 갖고 살기를 권고합니다. 그래서 몇몇 개월에 고유의 기도문을 정하고 함께 하기를 권고합니다. 3월에는 성요셉 성월, 5월에는 성모의 성월, 6월에는 성심 성월, 9월에는 순교자 성월, 10월에는 전교의 성월, 11월에는 위령성월이라고 부르고 각각 그에 맞는 기도문의 본보기를 기도서에 싣고 있습니다. 견진교리를 하고 있는 지금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께서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안식을 누리실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는 때입니다.
5. 가장 완전한 기도는 미사
지금까지 기도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정리하는 내용에서는 가장 완전한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기도와 생활에 대한 것을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여러 가지 기도에 대해서, 기도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교회에서 말하는 가장 완전한 기도는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이 미사는 지난 화요일에 말씀드린 성체성사를 이루는 바로 그 예절이고, 여러분들이 주일이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시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주일미사는 신앙인이 신앙인의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주일미사만 덜렁하니 참례하거나 나오면서 난 나와야 할 미사에 다 나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폐(語弊)있는 말입니다. 이곳 고양동 성당에는 일주일 중에 미사가 없는 날도 있긴 합니다만, 신앙생활의 증진을 위해서는 평일에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입니다. 집에서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도 가능하며 권할 만한 방법도 되지만, 이곳 성당에 오셔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듣고 그분의 몸도 영하는 일도 필요한 것입니다.
6. 우리는 기도를 언제 할 것인가?
성서에는 이 질문에 응답하는 곳이 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에페6,18)’. ’늘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사람이 언제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이런 말씀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마태 26,41)"하신 말씀대로 죄로 유인하는 유혹, 죄, 사랑의 실천을 필요로 할 때, 특별한 은총을 구해야 할 때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무엇을 했겠습니까?(마태오복음 4,1이하) 가끔씩은 먼동이 트긴 전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시기도 하셨다는(마르 1,35) 말씀이 성서에 나옵니다. 또한 기적을 하시기 전에도 기도하셨습니다.(마태 14,19; 14,23; 15,36). 최후만찬의 순간에도 빵을 당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만드는 예절을 거행할 때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26,27) 또한 인간의 입장이라면 피하고만 싶었을 수난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마태 26,42 -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이처럼 기도는 예수님의 생활과,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우리가 따로 떼어놓고 바라볼 수는 없는 아주 본질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을 완전한 기도는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신 주의기도입니다. 마침기도는 주의기도를 두 번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출처: Good News 성사 자료실 |